한국일보

황소 이야기

2021-01-05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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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위대한 예술 작품을 들라면 아마도 스페인 북동부의 알타미라 동굴에 있는 벽화가 첫 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1만8,000여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이 동굴 근처에 세워진 기념관에 가면 이와 똑같이 제작된 복사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기념관 입구에는 “알타미라 이후의 예술은 퇴보다”라는 피카소의 말이 적혀 있다.

이 벽화에는 수많은 동물이 등장하지만 그 중 단연 압권은 황소다. 거대하면서 섬세하고 웅장하면서 세련됐으며 엄청난 힘을 뿜어내면서 꿈쩍도 않는 절제된 황소의 모습은 보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스페인 북동부는 지금도 투우장에 나오는 황소 사육지로 유명하며 이곳 팜플로나에는 매년 사람과 황소가 함께 뛰는 축제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역사와 전통은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수렵과 채취로 먹고 살던 선사 시대를 지나 농경과 목축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간과 소는 더욱 가까워졌다. 야생 들소를 길들여 가축으로 만든 것은 지금으로부터 1만년 전 터키와 이란 등 중동 지역에서인 것으로 분석된다. 소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했는가는 영어로 ‘소 떼’를 뜻하는 ‘cattle’ 의 어원이 ‘자본’을 뜻하는 ‘capital’, ‘재산’을 뜻하는 ‘chattel’, ‘머리’를 뜻하는 ‘caput’, ‘지도자’를 뜻하는 ‘captain’과 같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소는 물질적으로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컬럼버스 이후 근 500년간 세계를 지배했던 유럽의 이름은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파’에서 왔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해변을 거닐던 이 공주를 보고 반한 제우스가 하얀 황소로 변신해 나타났으며 호기심 많은 공주가 이에 올라타자 그대로 바다를 건너 크레타 섬으로 갔다고 한다. 에우로파는 이 섬의 첫 왕비가 되며 여기서 시작된 것이 유럽 최초의 미노아 문명이다.

크레타 섬은 반인반수 미노타우르로도 유명하다. 당시 지중해의 강국이던 크레타 왕국은 아테네로부터 청소년들을 공물로 받았다. 소의 형상을 한 괴물 미노타우르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였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는 이 괴물을 죽이기 위해 자진해서 공물로 건너가며 그에게 한 눈에 반한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는 그에게 털실을 건네주며 이 미궁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알려준다. 그 덕에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르를 죽이고 무사히 아테네로 귀환하지만 자기를 도와준 아리아드네를 결국 배신한다.

소를 가장 신성시한 종교는 힌두교지만 그 전통 위에 서 있는 불교 또한 소를 도의 상징으로 본다. 득도의 과정을 일반인도 알기 쉽게 설명한 선 불교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십우도’(열마리 소 그림) 혹은 ‘심우도’(소를 찾는 그림)라는 것이다. 12세기 중국에서 나온 이 그림은 도를 찾는 인간이 어떻게 깨달음을 얻어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삶을 살게 되는가를 10개의 소 그림으로 묘사하고 있다.

첫 단계는 ‘심우’ 소를 찾는 것이고 두번째는 ‘견적’ 소의 발자국을 보는 것이며 세번째는 ‘견우’ 소를 보는 것, 네번째는 ‘득우’ 소를 얻는 것, 다섯번째는 ‘목우’ 소를 길들이는 것, 여섯번째는 ‘기우귀가’ 소에 의지해 집으로 돌아오는 것, 일곱번째는 ‘망우존인’ 소는 잊었지만 사람은 남은 것, 여덟번째는 ‘인우구망’ 사람과 소를 함께 잊는 것, 아홉번째는 ‘반본환원’ 원래로 돌아오는 것, 마지막 열번째는 ‘입전수수’ 시장에 나가 손을 드리우는 것이다. 시장에 나가 손을 내미는 행위는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깨달음을 얻은 후 보는 세상은 그 전과 같을 수 없다.

소의 특징은 우직함과 끈기다. 느리지만 지치지 않고 먼 길을 간다. ‘우보천리’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지난 1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이었다. 친지들과 만나지 못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모임을 가질 수도 없었고, 장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수많은 업소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문학적 숫자의 사람들이 얼마 전까지 이름도 알지 못했던 질병에 걸려 고통 받고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끝나지 않는 재난은 없다. ‘소의 해’를 맞아 두려움과 고통을 견뎌내며 소처럼 뚜벅뚜벅 걷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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