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를 쓰는 사람들

2020-12-29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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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고 조용한 팬데믹 연말에 ‘반짝’ 숨을 쉬게 해준 건 세 권의 시집이다. 그중 두 권은 시인이 아닌, 시와는 전혀 상관없어보이던 지인들이 낸 책이라 놀라웠고, 그만큼 더 감동적이다.

김종문 싱가포르 한국대사관 총영사의 ‘제발, 이것도 시였으면’과 지리산두레마을 대표 김호열 목사의 ‘향기로운 나그네’가 그들, 여기에 류시화 시인이 엮은 ‘마음 챙김의 시’를 매일 영혼의 비타민처럼 서너 편씩 읽고 있다.

김종문 총영사는 10년전 LA한국문화원의 부원장이었다. 김재원 문화원장 시절이었는데 두 분이 호흡을 맞춰 열심히 일했던 기억이 새롭다. 수많은 문화원장과 부원장을 만났지만 일을 잘했다거나 열심히 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몇 안 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성실한 노력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김재원 원장은 3년전 국립한글박물관 관장으로 중국 출장 중에 급사했다는 비보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때 김종문 부원장은 조금 남다른 사람이었다. ‘작은 키에 못생겼음’을 무기처럼 사용하는 유머에다, 정치인 외교관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소년처럼 순수하고 감성적이어서 이게 진짜 그의 모습인지, 기자 앞에서 순진한 척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귀국 후 몇번 안부 전화가 왔었는데 이 또한 전례 없는 일이어서 이상하면서도 감동했던 생각이 난다.

몇 년 전 페이스북 친구가 된 그가 가끔 올리는 포스트를 보면 책 소개와 독후감 일색이었다. 그러더니 최근 814번째 독서메모라며(놀라운 독서량!) 자신의 첫 시집을 올렸다. 소량 자비 출판했고 서점에선 팔지 않는다며 링크를 걸어두었기에 pdf 파일을 다운받아 단숨에 읽었다.

‘바람 부는 거리/ 떠난 기차 너머/ 새벽하늘 무심히 노려보는/ 덥수룩한 수염의 수척한 청년// 고뇌의 밤에도 글 한 줄 얻지 못한/ 텅 빈 마음/ 카뮈인 양 짧게 피워 문 담배/ 길게 빨아 내뱉은 창작의 고통// 그렇게 시를 쓰고 싶었던 스무살… / 꿈은 잊혔다// 여러 해 지나/ 다 잃은 줄 알았는데/ 한 톨의 불씨가 남아있어/ 다시 꿈을 꾼다// 이제는/ 있는 대로/ 보는 대로/ 느낀 대로/ 짧게 쓰는 쉰 살/ 제발, 이것도 시였으면’

‘시가 무엇인지 몰라 매일 밤 몸부림’치며 쓴 시들이라고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어린 시절 꿈이었던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일상과 추억, 아내와의 로맨스, 싱가포르의 이국적인 삶, 공무원의 직무, 시로 쓴 독후감들이 신선 명랑 유쾌하다. 사소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이지만 위트와 페이소스가 넘쳐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그러니까 김종문은 ‘진짜’였던 것이다.

홍성사에서 나온 김호열의 ‘향기로운 나그네’도 굉장히 뜻밖의 선물이었다. 김호열 목사는 김진홍 목사의 오른팔이자 두레의 핵심지도자로서, 1996년 두레공동체 미주본부에 부임해 두레운동을 크게 키웠다. 미 전국에 퍼져있던 후원자들을 결집시켜 힘과 자원을 한데 모으는 한편 사역을 다양화시켜 역동적이고 활발하게 일했다. 베이커스필드 두레마을 설립, 장학생 사업, 젊은이운동, 북한돕기 등… 그때가 국내외 두레공동체의 전성기였다고 회상된다.

김 목사는 2002년 훌쩍 LA를 떠나 지리산두레마을을 개척했고, 13만평의 산 속에 영성, 생활, 농업이 조화된 생태공동체를 조성해 지금까지 모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시집 출간이 뜻밖이었던 건 냉철하면서도 조금 냉소적으로 느껴졌던 그의 성정 때문이다. 젊었을 때 복음주의 청년지도자로서 한국교회 개혁과 회복을 위해 뛰었던 이력도 있고, 말하자면 모험이나 이념, 개혁 같은 단어가 잘 어울리는 ‘운동권 냄새’를 풍기는 리더여서 그가 시를 쓰리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람과 자연이 동행하는 길’이란 부제가 붙은 시집 머리말에서 그는 “산골 생활 17년. 도시에서 벗어나 생명과 빛이 가득한 자연에서 만나는 하나님으로 인해 나날이 기쁘다. 뒤늦게 시작한 어설픈 노동이 정화시킨다. 노동은 자라나 시를 낳는다.”고 썼다. 노동을 모르는 도시 사람으로서 가슴이 뭉클하고 뜨거워지는 말이다.

매일 노동하고 신심을 벼리며 깊은 성찰에서 나오는 맑은 시어들이 마음을 조용히 두드린다. 치열한 영혼의 투쟁 끝에 평정에 이른 신앙고백이기도 하고, 일상에서 깨닫는 자연의 신비와 경외감이다.

‘산을 바라보니/ 산은 사라지고 숲만 가득/ 숲속 거닐자/ 증발한 숲 사이 나무만 우뚝우뚝/ 스치는 나무마다 감싼 잎이 넘실거려/ 출렁이는 잎에 빨려들어 나마저 감추어진다// 숲은 블랙홀, 소멸의 성당, 자신에게서 도망치려/ 숲 찾는 회수가 늘어난다’ <‘소멸의 성당’ 전문>

시를 쓰는 것은 산문 쓰기보다 훨씬 어렵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기도, 틀린 말이기도 하다. 시는 꿈이다. 시는 숨이다. 시는 삶이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자기만의 고백이다. 2021년에는 모두 시인이 되어봄이 어떨까.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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