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우는 달

2020-12-29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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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그는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었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분노한 국민들은 새로운 지도자가 대한민국을 올바른 길로 이끌 것을 학수고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며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을 약속했고 이에 열광한 국민들은 84%라는 역대 최고의 지지율로 화답했다. 그 후 한 동안 하락세를 보이던 문 대통령 지지율은 2018년 4월 북한의 김정은과 보도다리를 거닐며 남북 화해의 신시대를 약속하자 다시 83%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문 대통령 지지율에 결정타를 먹인 것은 조국 사태였다. 공정과 정의를 누구보다 부르짖던 조국 법무장관의 부인 정경심이 딸의 진학을 위해 표창장 위조와 인턴 경력 허위 기재 등 법을 어겼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문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조국 사태는 지지율 하락 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던 진보적 지식인 일부를 강력한 비판자로 돌려 세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중 대표적 인물이 진중권 교수다. 2014년부터 노회찬, 유시민 등과 ‘노유진의 정치 카페’를 운영하며 다운로드 수 1억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그는 조국 사태를 계기로 “정경심이 하드 디스크를 빼돌린 것은 증거 인멸이 아니라 증거 보존”이라고 주장한 유시민과 완전히 갈라섰다. 그리고는 “스스로 붕대 감고 자진해서 무덤 속으로 들어간 미라 논객을, 극성스런 문빠 좀비들이 저주의 주문으로 다시 불러냈다”며 포문을 열었다.

진중권이 든 기치 아래 김경률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권경애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 서민 단국대 교수 등이 한데 모여 펴낸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라는 책은 3주 연속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를 지켰다.

문재인 정부 공격에 나선 진보적 지식인은 이들만이 아니다. 대표적 진보학자인 최장집 고대 명예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 … 위기의 본질은 한국 진보의 도덕적 정신적 파탄”이라며 집권 세력을 맹비난했고 진보 원로 홍세화씨는 “자유 한국당 세력이 오랜 동안 ‘자유’라는 말을 능멸해왔다면 민주당은 ‘민주’라는 말을 능멸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핵심 세력인 86세대를 “민주 건달”이라 불렀다.

그 와중에 이달 들어 악재가 연이어 터졌다. 주로 윤석열 검찰총장에 관한 것이다. 추미애는 윤 총장의 손발을 묶기 위해 그에게 직무 정지 처분에 이어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지만 법원이 이를 모두 뒤집은 것이다.

일부에서는 윤 총장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를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으나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윤 총장 징계 효력을 정지시킨 홍순욱 판사는 서울 지방 변호사회 우수 법관 평가에서 만점을 받은 사람이다. 당시 1,500여명의 평가 대상 판사 중 만점을 받은 사람은 둘뿐이다.

그리고 이번 판결을 내리면서 판사 사찰과 감찰 수사 방해 부분에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단지 정직 2개월이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끼칠 수 있고 무엇보다 징계위원회가 의결 정족수 4명을 채우지 못한 3명으로 구성돼 절차상 무효라는 이유로 윤 총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판사를 탄핵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이에 앞서 윤 총장의 직무 복귀 결정을 내린 조미연 판사는 더더욱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다. 호남 출신인데다 현정부 핵심 지지 세력인 국제 인권법 연구회 회원이다. 이런 인물을 탄핵한다면 스스로 자신의 팔다리를 자르는 것과 같다. 그런 판사도 윤 총장을 복귀시키면서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 맹종할 경우 검사들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유지될 수 없다”며 “윤총장을 직무 배제시킨 것은 … 검찰의 독립성 중립성을 몰각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런 연타를 맞은 문 대통령 지지율은 이번 주 들어 36%로 사상 최저, 부정 평가는 59%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듯이 기울지 않는 달은 없다. 수적 우세만 믿고 독단을 일삼는다면 기우는 속도는 빠를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온국민을 보는 정치를 하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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