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까지 장식된 흰색의 대형 천막을 두 개나 설치해 놓은 고급 스테이크 하우스 앞을 지나갈 때 마다, ‘저 식당은 걱정없네 뭐.’ 하면서, 파킹 자리가 별로 없고 천막을 칠 자리도 제대로 없는 센트럴 애비뉴를 생각하게 된다. 작은 식당들, 베이글 가게 또는 구멍가게 같은 델리들…. 그 중에는 지난 봄 문을 닫은 채 다시 열지 못하는 곳도 있다.
웨체스터의 중심 거리인 센트럴 애비뉴가 올해 만큼 을씨년스러운 적은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흔적인 것이다.
인터넷이란 단어가 낯설던 시절, 센트럴 애비뉴는 웨체스터 지역에서 가장 번화한 중심상가였다. 특히 추수감사절이 지난 다음날부터, 크리스마스 바로 전날까지도 신호등에서 신호등까지 차가 줄을 서, 센트럴 애비뷰 전체를 파킹장이라고 불렀었다.
차량의 행렬이 남쪽 용커스 부터 메이시즈, 시어즈, 삭스 피프스, 블루밍데일 등의 백화점이 있는 화이트 플레인즈까지 15마일 거리를 꽉 메워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흥청거리는 할러데이 분위기에 기분이 들뜨던 거리다.
38년전, 맨하탄에서 몇 달을 지낸 후 곧장 웨체스터에 자리 잡고는 여지껏 하루에도 몇 번씩을 이 센트럴 애비뉴를 지나 다닌다. 아이들이 어릴 땐 맥도널드에, 캐비지 페치 키즈와 닌자 터틀 게임을 사러 ‘토이즈 알 어스(Toys R Us)’로, 지금은 없어진 몽 파르나스(Mont Parnasse) 다이너에서는 간혹 한인 학부모를 만나기도 했으며, 이탈리안 식당 ‘피자 앤드 브루(Pizza and Brew)’는 모처럼 외식을 하러 가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대학을 간 후에는 1950년대부터 한자리에 있는 맥주집 ‘캔들 라이트(Candle Light)’에서 남편이랑 로멘스 그레이 맥주를 마시곤 했고, 없는 시간 쪼개어 가던 무비랜드, 반스 앤드 노블 등등….
플러싱의 노던블러바드 또는 뉴저지의 팰리세이드 애비뉴와 비교할 수야 없지만, 웨체스터의 한인들에게는 그나마 한국 정서를 채워주던 센트럴 애비뉴. 70년대 말부터 유일한 한국식품점이었던 ‘동양식품점’과 유일한 한국 식당 ‘아리아’에는 커네티컷서부터 한인들이 찾아 왔었다. 갈비 하우스도 생겼고, 한인 미용실이 하나 둘 생기며 더구나 H 마트가 들어오고 이어서 순두부 집이 생겼고 한인 이발소가 생기던 그 때 마다, ‘드디어 여기도 한인들이 살기 편한 곳이 되어가는구나’ 흥분했었다.
그런데, 대형 도매상과 인터넷 비즈니스로 밀리고 밀리던 센트럴 애비뉴에 이제 팬데믹까지 덮쳤으니, 지난 여름 뜨거운 햇빛이 고요하기만 했던 이곳은 고스트 타운 같았다. 뿐인가, 가깝게 지내던 가정들이 뉴저지로, 애틀랜타로 이주해갔고, 한인 올드타이머 몇 분이 코로나로 세상을 떠나셔서, 백신 차례를 기다리는 마음이 스산하다.
2021년에도 한참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살아야 할 줄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럴수록 새해는 더욱 희망을 심어주는 나날이 되어 줄 것을 간절히 빌고 있다.
새로운 정부 안에서 경제가 되살아나면, 온갖 시련에도 명실공히 웨체스터의 중심을 지키고 있는 센트럴 애비뉴가 또다시 복잡하고 번잡한 거리가 되어, 점점 늘어나고 있는 한인 2세 가정들에게 한국의 정서를 풍성히 제공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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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려/ 한국일보 웨체스터 전 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