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의 워싱턴 방문 일화
1995년 7월 김영삼 대통령 국빈방문을 마치며 영빈관(Blair House)을 떠나며 경호 담당했던 경찰들과 악수 나누는 모습. 당시 나는 경사(Sergeant)였다.
사우디 왕실 문양이 박힌 Rolex.
앞으로 할 이야기들은 실화이며, 또한 사랑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남녀 간의 그런 달캉달캉한 이야기는 기대 안하시기 바란다. 이 이야기들은 남자이기에 언제, 어디선가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그래서 이제야 남자라고 혼자서 묵묵히 걸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다다른 남자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오마주(Homag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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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장처럼 차고 다니던 대통령 시계들
워싱턴에서 입김 좀 있다고 자처하던 old timers(원로)들에게는 3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번째는 한국 대통령 방문 시 앤드류스 공군기지(Andrews Airforce Base)에 태극기를 손에 들고 마중갈 수 있는 특권(?)이다.
두 번째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선택해주는 평통위원이 되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대통령 이름 석자가 박힌 대통령 시계를 완장처럼 차고 다니던 공통점이 그것이다.
경찰 경호와 통역을 동시에 했던 나의 첫 대통령 경험은 권위적이었던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다. 1985년 그분의 워싱턴 방문이 기억나는 것은 당시 다소 협소했던 주미 대사관(현 영사관)을 방문하고 각국 대사관들이 즐비한 매사추세츠 애비뉴로 이동 중 다른 대사관들을 유심히 바라보시며 그분이 말씀하셨다.
“저 건물은 어느 대사관인가?” “각하, 주미 일본 대사관입니다.”
당시 한국대사관과 지척에 위치한 넓고도 우아한 분위기에 일본 건축양식을 모티브한 주일 대사관 건물은 한국 대사관과 사뭇 대조 됐었다. 순간 전 대통령 특유의 경직된 표정에 의지의 날 일자 입술이 굳어졌다. 한국말로 “그래?” 일본말로 “요시” 하는 듯한 전 대통령의 무언의 표정에서 주미 대사관의 앞날이 보였다.
# 주미대사관, 대사관저 구입 비화
그 후 한국정부는 번듯한 5층 캐나다 대사관을 사들여 바로 옆에 위치한 2층 일본 대사관 건물과 관저를 아래로 내려다보게 되었고 스프링 밸리 지역에 위치한 주미 대사관저 역시 대대적인 공사 후 그 어느 대사관저에 손색없는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 경제사정이 해외공관에 큰 예산을 투자할 위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85년 이후 워싱턴 DC의 한국 대사관과 관저 등의 부동산 평가이익이 폭등하여 2016년 국정 보고서에 의하면 매입가보다 28배가량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 1,350만 달러에 매입한 캐나다 대사관은 DC시 정부 평가액이 4,168만 달러이고 전체적으로 1985년도 이후 워싱턴 DC 정부 평가 액수는 8,293만 달러로 31년 만에 한국정부 자산이 28배 늘어난 액수다. 한국사람 만큼 부동산에 안목이 있는 민족은 없는 듯하다.
# 노태우 대통령과 블레어 하우스
노태우 대통령의 방문은 그분의 매너리즘이나 인품과 같이 전 대통령과 사뭇 달랐다. 전 대통령이 모든 것을 통제 관리 하는 스타일이었다면 노 대통령 시기부터 다소 숨통이 터지는 분위기였다.
일례를 들자면 전 대통령 행선지와 노선에는 데모대가 눈에 보이면 안 된다는 지침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그것이 먹힐 리가 없었다. 그래서 대사관(중정)에서 K St.와 Connecticut Ave. 선상의 미국 상점들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광고 금액을 지불하고 “Welcome Korean President Chun” 이라는 전자 문구나 배너를 달았고 당시 보수 언론이었던 워싱턴타임스에 전 대통령 방미를 대대적으로 In for commercial하여 앞 지면을 도배하기도 했다. 워싱턴타임스 기자에게서 직접 들은 내용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미국방문은 공식방문(Official Visit)이었지만 최고 우방임을 고려하여 백악관에서 그분을 영빈관(Blair House)에 묵게 하셨다. 영빈관은 국빈방문 국가 원수에게 일년에 2~3번 밖에 허용 안 되는 독특한 침식공간이다.
저녁 늦은 시각 영빈관 거실에서 경호실 요원들과 같이 staff members(하얀 유니폼을 착용한 나이든 흑인들의 정중한 서브가 인상적이었다)들이 건네주는 커피와 다과를 즐기며 다음날의 스케줄을 논의하는데 노 대통령이 편안한 차림으로 내려오셨다.
모두 벌떡 일어나니 만면에 미소를 띠우시며 천장 medallion 장식을 유심히 보시며 “멋지군” 하셨다. 원래 Blair라는 분의 개인 자택이었는데 1942년 옆 4개 건물을 미 정부가 사들여 국빈 방문 시(State Visit) 국가수반들의 거처로 사용하며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호텔(The world’s most exclusive hotel)”이라 불리고 있다는 설명에 “그럼 우리 돈 내야 하나?”하며 유머 있게 받아넘기셨다. 그날 ‘경호실’ 이라는 문구가 뒷면에 새겨진 시계를 경호실 부장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 워싱턴 힐튼 호텔 로비에 모인 유지들
1995년 7월 한여름 워싱턴을 국빈으로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은 야당 기질과 굳건한 한국남자 분위기가 몸에 배어 있었다. 27일 저녁 힐튼 호텔에서의 동포와의 만찬은 두 가지 의미가 컸다.
우선 미국사람들이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었다. 한국산 상품들이 미국시장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었고 미 언론에 도배되던 서울의 과격한 데모 사진들이 사라졌다. 또한 열악한 환경에서도 경제적 성공을 이룩한 미주한인들이 왕성하게 주류사회의 한 축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16가에 위치한 힐튼 호텔은 보안유지가 까다로운 위치에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저격당했던 같은 이름의 호텔이어서 한국 경호실은 상당한 우려를 했다. 당시 선발팀으로 오셨던 경호차장님과 같이 호텔 뒷문까지 모두 점검하고 호텔 로비에 들어서니 워싱턴과 전국에서 오신 유지들이 모여 번잡했다.
그때 미국 이민 초기부터 알고 지내던 C회장이 나를 불러 주위 분들에게 인사시켜주었다. 7-11으로 시작해 그로서리 사업으로 부를 쌓아온 그분은 정치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대인관계에서 후배들에게 반말을 하며 유명 정치인 이름을 팔곤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다.
그 자리에는 당시 대사관에 근무하던 윤 총경도 있었고 그는 나에게 C회장을 조심하라는 언질을 주셨다. 마치 C회장이 나를 경찰시키고 승진시켜준 듯이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는 것이었다. 30년을 넘게 아는 사이였던 C회장의 인덕을 모르는바 아니었지만 섭섭했고 대통령 행사는 자신들의 위상을 보여주는 자리처럼 보였다.
# 김영삼 대통령 “FBI 국장해야지!”
국빈방문을 마치고 영빈관을 떠나는 국가원수에게 경호를 담당했던 경찰관들이 줄 서서 악수하며 배웅하는 것이 관례이다. 앤드류 공항으로 떠나시기 위해 영빈관을 나오시는 김영삼 대통령과 악수를 하는데 수행 비서관이 한국계 경찰간부라고 나를 소개하자 흐뭇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럼 열심히 해서 FBI 국장 해야지! 미국에서 출세해야 해. 그게 애국하는 거야.”
일반 경찰과 FBI의 다른 점을 모르셔서 하신 말씀이셨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분의 말씀을 좀 더 새겨들었어야 했다. 태극마크를 단 비행기가 앤드류스 공항을 떠나기 전 비서실에서 ‘김영삼’이라 쓰인 시계를 경호했던 경찰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고 한국 대통령이어서 의미가 남달랐다. 한덕수 대사님(총리) 재임 시에 관저에서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박정희 대통령이던 노태우 대통령이던 내가 경험한 모든 대통령들은 애국자 분들이셨다.”
그 애국자분들의 명복을 빈다.
PS: 사우디 왕자가 국빈 방문 했을 때 경호했던 친구들도 시계를 선물로 받았다. 차이점이라면 로렉스 시계에 사우디 왕가의 문양이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애국의 의미도 함축하고 있는 대통령 시계를 어찌 가격으로만 환산할 수 있을까. <다음에 계속>
(jahn81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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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