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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선물 받으셨나요?

2020-12-24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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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크리스마스에는 2가지 선물이 배달되고 있다. 이미 받으신 분들이 있나 모르겠다. 하나는 하늘로부터, 또 하나는 땅에서 오고 있다.

하늘에서 온 것은 목성과 토성이 겹쳐 보이는 ‘대결합(Great Conjunction)’이었다. 태양계의 두 거대 행성이 마치 붙은 것처럼 보이는 이 우주쇼가 지상에서 관측된 것은 800년만의 일이다. 중세이던 1226년, 조선조 광해군 15년 후 처음이라고 한다.

남가주에서는 동지인 지난 21일 초저녁 육안으로도 관측됐다. 별들이 채 출근하기 전인 그 시각, 하늘에는 화성, 달, 목성-토성 결합체 외에는 빛을 발하는 물체가 없었다. 관측 장비로 생중계 되는 것을 지켜 봤다면 두 행성의 모습은 더 또렷하게 관찰됐을 것이다. 이 대결합은 ‘크리스마스 별’로 불렸다. 동방 박사 세 사람에게 예수 탄생을 알렸다는 베들레헴의 별에 비유되기도 했다. 별 하나에 소망과 구원을 희원할 만큼 지금은 고난의 때이기 때문이다.


지상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코로나 백신이다. 코비드-19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 선물의 실물감은 미처 절감되지 않을 수 있다.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인류는 지금도 출구 없는 어둠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이 고비만 넘기면 터널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으니 어찌 선물이 아니겠는가.

올해 안에 백신 개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의 뻥’인 줄 알았다. 잘해야 반신반의, 희망 사항에 그쳤다. 특히 유력 언론들이 그랬다. 하지만 이 일은 거짓말처럼 이뤄졌다. ‘뻥통령 트럼프’의 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가 재선됐더라면 해고 1순위에 포함됐을 국립 앨러지 전염병연구소장 파우치 박사의 평가니 인색하게 받아 들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파우치 박사의 이런 평가는 진영 논리에 함몰되지 않는 미국의 양식을 보는 것 같아 반갑다.

코로나 백신이 이렇게 빨리 개발된 것은 연방정부의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 덕분이다. 백신 개발을 위한 민관 합동 프로젝트인 OWS에는 연방 보건부와 산하 기관 뿐 아니라 국방부 등 5개 부처가 참여했다. 민간에서는 내노라하는 전문가와 백신 개발의 최일선에 선 주요 제약회사 등이 참가했다. 지난 5월15일 발족한 OWS의 총력전이 없었다면 서방세계의 백신 개발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엄청난 자금이 뒷받침됐다. 100억달러이던 예산이 나중에는 180억달러로 불어났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백신을 미국 정부가 미리 샀으니 제약회사야 무슨 걱정, 존슨 & 존슨 등에는 직접 연구개발비도 지원했다. 생산만큼 엄청난 일이 된 백신의 배달은 OWS 운영책임자인 현역 육군 대장이 총괄하고 있다. 코로나 백신 개발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시간이 지난 뒤 더 후해 질 것으로 생각된다.

백신 개발에는 이민자, 그중에서도 영어에 액센트가 확연한 1세들이 주도적인 역활을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 아니다.

초고속 작전의 총괄 책임자인 몬세프 알라위는 모로코 1세 이민자이다. 그의 미들 네임인 ‘모하메드’는 이슬람을 타기시하는 분위기 때문인지 명기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트럼프의 의해 픽업된 백신 전문가여서 오히려 합당한 크레딧을 받지 못했다. 알라위 박사는 모로코에서 태어나 벨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이민 온 삼중 국적자. 트럼프가 말하는 ‘위대한 미국’의 실체는 이런 사람들이다.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은 메신저 RNA, 한국어로는 ‘전령 리보핵산’ 방식으로 개발됐다. 설명을 들어도 이 분야의 상식이 없으면 이해가 쉽지 않다. 단순하게 말하면 바이러스에 대항할 항체를 만들기 위해 약화된 실제 균 대신 항체를 만들 수 있는 설계도면을 넣었다고 하면 그럴듯 할까. 이 방식은 맞춤형 항암제 개발에 쓰이는 신 기술이다.


백신 개발에 새 장을 연 이 기술의 개발에는 헝가리 출신의 1세 이민자가 핵심 역활을 했다. 카탈린 카리코 박사. 화이자와 백신을 공동개발한 바이오앤텍의 선임 부사장이다. 85년 헝가리에서 이민온 그녀는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RNA 연구에 매달렸으나 번번이 연구비 확보에 실패해 추방 위기에까지 내몰리는 가운데서도 이 첨단 기술의 마지막 난제들을 풀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화이저에 이어 2번째로 백신 승인을 받은 미국의 제약회사 모더나도 이민 1세의 투자로 창업됐다. 모더나 회장인 노바르 아피옌은 레바논 태생의 아르메니아계. 코로나 백신 개발에 투입된 브레인은 이민 1세가 3분의1, 2세까지 더하면 이민자가 절반 정도에 이를 것으로 생의학계에서는 추산한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문명을 꽃피운 곳에는 어디나 천하의 인재가 모였다. 이들이 문명 발달의 주역이었다. 열려 있는 마음, 차별 없는 세상이야 말로 위대한 문명에 이르는 길이었다. 새삼스런 이런 깨달음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생각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시리아 이민 2세였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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