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제프의 시간여행 28. 시계 이야기 #20: 고장난 시계(3)

2020-12-21 (월) Jeff Ahn
크게 작게

▶ DC서 범인과 내 총구가 불을 뿜었다

제프의 시간여행 28. 시계 이야기 #20: 고장난 시계(3)
제프의 시간여행 28. 시계 이야기 #20: 고장난 시계(3)

1993, 6월 1일자 워싱턴 포스트 기사.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경찰이 현장 사진을 찍고 범인의 시신은 길바닥에 누워있고 Homicide(살인과) 형사들이 인터뷰하는 모습.


앞으로 할 이야기들은 실화이며, 또한 사랑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남녀 간의 그런 달캉달캉한 이야기는 기대 안하시기 바란다. 이 이야기들은 남자이기에 언제, 어디선가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그래서 이제야 남자라고 혼자서 묵묵히 걸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다다른 남자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오마주(Homage)다.

-------------------------------------------------------------

# 나는 살인자다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다. 정당방위나 법적인 해석을 떠나 한 고귀한 생명을 뺏는다는 것은 인간 본연의 자세를 벗어난 행위다. 오죽하면 십계명에 명시되어 있고 불교에서는 한걸음 나아가 모든 생명을 존중하라 가르치겠는가.
생명을 구하겠다며 뛰어든 DC 경찰 생활은 생사를 다투는 전쟁이었다. 생명을 구하기도 했지만 생명을 내 손으로 앗아가기도 했다. F. 스캇 피츠제럴드는 “영웅을 보여주면 비극을 보여주겠노라”고 말했고 국방장관을 역임한 도널드 럼스펠드는 “아는 세상보다 모르는 그리고 가려진 세상이 더 많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고장 난 시계는 시계바늘이 멈추어 서있다. 그 이야기를 하겠다.


# Memorial Day, 1993
눈부시도록 화창한 오월의 오후 2시, 공휴일이었던 당일 오전 근무는 한산했다. 그리고 불과 얼마 후 닥칠 비극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채 2시30분에 교체되어 들어올 저녁 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1관구 경사(sergeant)로 순찰대 감독관(supervisor) 임무로 뉴욕 애비뉴를 순찰하고 있었다. 순간 무전기에서 교환수의 다급한 음성이 전해졌다.

“a black male with a shotgun shooting at bystanders walking south bound on 1600 block of New Jersey Ave(장총을 든 흑인이 행인들을 쏘고 있다. 뉴저지 애비뉴)”
1초의 여유도 없이 Scout 11(담당 경찰 지역과 차 번호)의 Officer Fore(포 경찰관)의 음성이 무전기로 들렸다.
“Scout 11, around the corner 1099(바로 옆, 갑니다)” 1099이란 의미는 혼자 경찰차에 있다는 암호다. 교환수가 소리쳤다 “Need back up, anyone?(누가 받쳐줄 거야)”
나는 마이크를 거머쥐었다. “Cruiser 220, 5 blocks away, 1099” 사이렌을 울리고 개스를 바닥까지 밟았다. 뉴욕 애비뉴에서 급커브로 돌아 뉴저지 애비뉴로 진입했고 이제 불과 100미터도 안 남은 거리….

# 아비규환의 거리
바로 앞에 달려가던 Officer Fore의 경찰차에서 시커먼 연기가 났다. 급브레이크를 잡으면서 차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그의 차가 오른편 대각선으로 정지하며 운전석 문이 동시에 열렸다.
길에서 뛰어놀던 여러 명의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내 방향으로 달려오며 내 시야를 가렸다. 그 뒤로 대로 중앙선 노란 두 줄을 밟으며 걸어오던 긴 코트의 용의자가 장총(double barrel shotgun)을 정조준하며 포어 경관(Officer Fore)에게 쏘았다. 경찰차의 옆 유리(Side Mirror)가 작살나며 파편들이 공중에 날았다. 범인의 총구에서 흰 연기가 나오고 그는 여유 있는 동작으로 탄알을 재 장전했다. 영화에서나 볼만한 장면이었다.

머리털이 솟구치고 심장은 가슴 밖으로 이미 나온 상태였다. Glock19을 오른손에 거머쥐고 왼손으로 나에게 달려오는 아이들을 경찰차 뒤로 피신시키며 바라보니 포어 경관은 차문 뒤에서 나를 쳐다봤다. 그는 우리 서로 발령 온 지 불과 몇 개월 안 되는 신참이었으나 나와 같은 군 출신.
갑작스럽고 단 몇 초 만에 벌어진 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나는 범인의 관심을 포어 경관에서 나에게로 옮기기 위해 길가 우체통으로 뛰어갔다. 일단 다른 공범이 현장에 있는가를 확인할 필요도 있었다. 또한 경찰 사격 훈련 중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사격 목표를 넘어 총알 착시점을 고려하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무고한 시민이 다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놀란 시민들이 뿔뿔이 도망가고 있었으나 그의 뒤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와 포어 경관는 좌우로 20야드 간격. 범인은 우리들 앞 40야드 정도에 있었다. 그러나 범인은 장총에 탄알을 장전한 후 노란 라인을 걸어 다가오며 좌우로 대치한 우리에게 한발씩 쏘아댔는데 그 고막을 찢는 듯한 총성에 내 차 뒤에 숨어있던 아이들은 괴성을 지르며 공포에 떨었다.

그와 우리 간의 간격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우체통 뒤에서 내가 손가락으로 1, 2, 3, 포어에게 신호를 보낸 후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방아쇠를 당겼고 동시에 일어선 포어의 총구도 불을 뿜었다. 범인이 쏜 탄알들이 내 귓가를 스치며 지나갔고 금세 말끔하던 우체통은 곰보가 됐다.
그가 한방씩 나를 향해 쏘아댈 때마다 내 어깨가 움츠려졌고 그가 몸을 틀어 포어 경관에게 쏘아댈 때는 차라리 나에게 쏘라고 하고 싶었다. 그는 얼마 전 갓난아이를 출생했는데 나에게 인형 같은 아이 사진을 보여주며 좋아했었다.

# 마지막 빛(last light)
영화에서 총을 한방 맞으면 금방 쓰러지는 것이 새빨간 거짓말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나와 파트너의 탄알들이 그의 가슴에 작은 연기를 일으키고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그는 쓰러지거나 멈추지 않았다. 방탄조끼를 착용한 것 같아 무릎을 향해 쏘기도 했다. 결국 그의 몸이 검은 차도 위에 쓰러졌다.
이 모든 과정이 단 1-2분. 루이스 캐롤(Lewis Carroll)은 Alice in Wonderland에서 ‘순간이 얼마나 기나?’ 라는 질문에 ‘영원’ 하다고 대답했다. 죽고 사는 것은 순간이지만 영원한 것이다.


범인의 손에서 총을 걷어내고 그의 목에 손을 대고 생사를 확인하는데 그의 눈동자에서 마지막 빛이 떠나는 것을 보았다. 옆에 서있는 포어에게 “괜찮아?”라고 물으니 괜찮다고 답했지만 파편에 맞은 오른쪽 이마에서 가는 피가 흘러내려 목 줄기까지 실줄을 만들었다. 내가 그의 이마를 가리키자 “It’s nothing(아무렇지 않아요)” 하며 손으로 피를 훔쳤다.
큰길 좌우로 구경꾼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현장을 보호하고 감독할 책임이 나에게 있었다. 무전기를 찾는데 너무 위급한 상황에 무전기를 차에 놓고 내린 것을 그때서야 감지했다. 옆에 서있는 포어 경관의 무전기로 상황을 보고하고 현 위치에서 내가 Watch Commander(서장 대리)가 도착하기 전까지 Command Post(현장 지휘)하겠다고 알리며 살인과(Homicide)에 연락하라고 지시했다. 거의 동시에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교육받고 훈련한대로 일 처리를 해나갔다. 남자란 때로는 위급한 상황에 마주친다. 그럴 때 어떤 남자인가가 가려진다.

# 내 가슴을 후려치던 어머니
그렇게 정신없이 현장 수습을 하던 중 육중한 체구의 여인이 모여든 사람들 손을 뿌리치며 숨져 길에 누워있는 그에게 달려와서 엎드려 오열했다. 죽은 자의 어머니였다.
그녀의 시각에서는 법을 집행하고 시민을 보호한 경찰관은 오직 자식을 죽인 살인자에 불과했다. 내 앞으로 걸어온 어머니의 얼굴은 멍이 들어있었고 그녀는 두 팔로 내 가슴을 후려치며 소리쳤다.

“You killed my baby(니가 내 새낄 죽였어).” 몇 번이나 내려치는 그녀의 손 방매 질이 왜 아프지 않았을까? 그렇게 여러 번 치던 손맛은 점차 힘을 잃고 그녀는 내 품에 기대 울었다. “He was a good boy until he touch that drugs(마약 하기 전까지는 착했던 아이였어).”
부검 결과 그의 몸에서는 다량의 마약 PCP가 검출됐고 그날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 다름 아닌 아들의 가정폭력에 시달린 그의 어머니였던 사실도 밝혀졌다.
고장 난 물건은 고치면 된다. 그러나 잘못된 인생은 어떻게 고치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렘브란트 작품은 ‘돌아온 탕아’다. 나는 그에게 돌아올 기회를 영원히 빼앗아간 것은 아닐까?

한 생명을 가져간다는 것은 그의 과거와 그의 모든 미래, 그리고 모든 희망을 걷어간다는 것이다. 매년 성탄 시즌이 오면 내 가슴을 후려치던 그 어머니가 생각난다.
“I am so sorry.”
<다음에 계속>

(jahn8118@gmail.com)

<Jeff Ahn>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