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도 판사를 그만 둔 후 변호사를 할까. 문득 궁금했다. 판사경력 20년이 넘는 현직판사에게 문의했다. “있긴 있어요, 근데 아주 드물죠”. 할 수는 있구나. 판사 출신 변호사를 찾기 어렵긴 하지만. 판사는 은퇴 후 변호사 보다는 주로 중재 재판, 그쪽 일을 많이 한다. 중재는 민사 소송을 당사자끼리 합의해서 빨리 끝내려고 할 때 이용하는 제도. 이를 진행하는 중재자는 사설 판사(private judge)라고 할 수 있다. 검사를 하다가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경우는 안다. 더러 광고에 나오니까.
그에게 현직에서 물러난 판 검사에 대해 물어본 것은 미국의 전관예우에 대해 알고 싶어서였다. 여기도 사람사는 세상인데 그런 것이 아예 없기야 하겠는가.
10년 가까운 검사생활을 한 후 판사가 된 그는 우선 ‘전관예우’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2세인 그에게 이 말은 어렵기도 하려니와, 여기에는 없는 관행이어서 이해가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 유능한 검사는 대형 로펌에서 스카웃에 나선다고 한다. 재판 경험에다 법원 시스템과 내부 규정을 잘 아는 전문 지식 때문이다. 갱 전담반 검사였다면 갱 사건 변호를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커넥션이 아니라, 노하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미국의 사법기관은 인맥이 발을 붙이기 어려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검찰은 연방, 주, 지역(카운티) 검찰로 나눠져 독립기관으로 활동한다. 전국의 검사를 기수별로 세울 수 있는 한국과는 조직 문화가 다르다. 이해 충돌을 막는 윤리규정은 엄격하다.
예를 들어 LA카운티 검사의 형제자매 등이 관련된 형사 케이스가 있다면 주 검찰로 넘어간다. 카운티 검찰이 다루지 않는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LA 수피리어 판사 가족이 강도를 당했다면 케이스는 원칙적으로 오렌지카운티 등 타지역 법원으로 이관된다.
기소는 검찰, 수사는 경찰로 업무가 나눠져 있다. 카운티 검찰도 수사권이 있지만 예외적으로 행사한다. 경찰이 수사결과를 가지고 오면 검찰은 기소, 불기소, 기소를 위한 보완수사 요구 등 셋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그것 뿐이다. 두 기관 사이에 다툼이 있을 수 있지만 충돌 여지는 그만큼 적다.
한국에는 없는 대배심, 기소 배심제가 미국에 있다. 대배심은 16~23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다. 검찰은 복잡하거나, 정치적이거나, 일반의 관심이 큰 사건 등은 대배심에 넘긴다. 기소 여부를 오히려 일반 시민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기소가 배타적인 권한인 한국 검찰과는 다르다. 케이스가 대배심에 넘어가면 검찰이 기소할 때와는 달리 확보된 증거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비밀 유지가 가능해 재판에서 검찰이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몇 가지만 꼽아 봐도 미국과 한국의 검찰은 이렇게 다르다. 막강한 권력기관인 한국 검찰의 개혁은 반복되는 이슈다.
한국은 검찰 총장의 징계 문제로 여론이 반으로 나뉜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징계 사유란 게 시시하다. 판사 불법사찰-. 뭐가 있나 했더니 공개된 자료의 취합이라는 반론이다. 재판 때 참고하려고 모았다고 한다. 부적절한 교류는 총장이 언론사 사주와 저녁 한 번 한 것, 정치적 중립의무 훼손이 뭔가 했더니 공직에서 물러난 후 정치하지 않겠다고 공언하지 않았다는 것 등이다. 좀 우습지 않은가.
정권은 검찰개혁을 내세운다. 손가락 대신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봐 줬으면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어설프니 개혁이란 말이 민망하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이 달인지, 아니면 어느 별인지 의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은 총장은 당당하고 완강하다. 그는 처음부터 헌법과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했다. 헌법과 국민? 한국 검찰이 언제 그것만 보고 왔던가. 한국 검찰이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우는 조직인가. “정의와 공정의 얼굴을 하고, 검찰권은 자신을 위해 쓰는 조직”이라고 한 전직 검사는 검찰을 비판한다.
총장이 볼 수 있는 하늘은 우물 안의 하늘이다. 검찰 발 정의가 객관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는지 우물 속에 빠져 있는 사람, 그 조직에서 뼈가 굵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현직 대통령도 감옥에 보내는 나라에서 검찰총장은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인 중립을 위해 총장 임기가 보장돼 있다고 한다. 한국 검찰이 언제 독립적이고 중립적이었던가. 실현된 적이 없는 가상의 사실을 토대로 성역을 만든 것은 난센스다.
같이 갈 수 없다면 자르고, 임명권자가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이 오히려 당당해 보인다. 기왕 대통령 중심제니까. 최종 책임은 국민이 물을 것이다. 임명직 공직자 한 명의 거취문제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는 것은 역으로 이 조직이 이상 거대조직이라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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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