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크로노타입’(chronotype)이라 부르는 각자의 독특한 생체리듬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아침 일찍부터 몸과 정신이 각성을 하는 반면 어두워져야 에너지가 돌고 두뇌활동이 활발해지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이다.
과학자들은 대부분의 유전적 인자에 의해 크로노타입이 결정되는 것으로 본다. 특히 수면 유전자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수면패턴은 자연스럽게 생활패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직업적 이유 등으로 생활패턴이 일시적으로 바뀔 수는 있지만 기본적인 크로노타입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10여 년 전 한국에서는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이란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책의 핵심 주장은 “성공한 사람들은 아침이 부지런한 사람들로, 아침을 잘 활용해야 인생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기계발서 열풍을 타고 이 책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책의 저자는 사이쇼 히로시라는 일본인이었다. 그런데 정작 일본에서 그의 책은 별로 팔리지 않았다. 유독 성공에 목을 매는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기현상이었다.
사람마다 크로노타입은 제각각이다. 새벽 기상이 자연스러운 ‘참새형’ 신체리듬이 있는 반면 밤이 돼야 살아나는 ‘올빼미형’ 신체리듬도 있다. 그런데도 너무 ‘아침형 인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면 ‘저녁형 인간’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이런 두 유형의 크로노타입 장단점에 관해서는 그동안 다양한 연구들이 이뤄져왔다. 연구 결과들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아침형 인간’은 ‘저녁형 인간’보다 건강상태가 좀 더 양호하다. 비만과 대사증후군 등의 질환 발생이 적고 사망률도 10% 정도 낮다. 활동적 기질 때문에 우울증과 조울증 기질도 상대적으로 낮다.
이 같은 기존의 연구 결과들은 최근 핀란드 오울루 대학의 연구에 의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스칸디나비아 스포츠 의학 및 과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아침형 인간’은 ‘저녁형 인간’에 비해 훨씬 많이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유형 간 차이는 남성의 경우 매일 30분간의 워킹, 여성은 20분간의 워킹에 해당할 정도로 컸다. 연구진은 6,000명에게 활동추적기를 부착토록 한 후 2주 간의 관찰을 통해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
그렇다고 ‘저녁형 인간’이 너무 기죽을 이유는 없다. 아이큐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올빼미형’이 많고 더 높은 수준의 인지능력을 보인다는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연구도 있으니 말이다. 또 자극이나 위험 감수와 연결된 호르몬 수치가 높아 도전적인 성향이 강하고 창의적이라는 보고도 있다.
‘저녁형 인간’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밤 8시쯤 식사를 한 후 본격적으로 집무를 본 윈스턴 처칠이다. 또 플로베르, 프란츠 카프카, 제임스 조이스 등도 밤을 새우며 글을 썼던 작가들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형별 특성이 있다고 해서 이것을 지나치게 일반화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사이쇼 히로시의 주장을 쫒아 무리하게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도, 어줍지 않게 밤샘을 하며 ‘저녁형 인간’ 흉내를 내는 것도 아니다. 크로노타입과는 관계없이 어떤 태도를 가졌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다만 당신이 ‘저녁형 인간’이라면 의도적으로라도 몸을 좀 더 움직이고 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는 핀란드 연구진의 권유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낮의 활동성이 떨어지면서 잠드는데 애를 먹는 ‘팬데믹 저녁형 인간’이 됐다면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