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런 케이티의 ‘네 가지 질문’이 있다.고통에서 벗어나 참나를 만나기 위해서 자기의 생각에게 “1.그게 진실인가? 2.나는 그게 진실인지 확실히 알 수 있는가? 3.이 생각을 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4.이 생각이 없다면 나는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다. 그렇게 묻는 것은 생각은 사실이 아니고 고통을 가져오기 때문이라 한다.
혜민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youtube 에서 보면서 우리 사회가 빠른 변화의 과정 속에 있는 것이 원인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많은 고통을 느낀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생각은 사실인가?” “나는 지금 바르게 보고 있는가?”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자기 중심으로 보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ego는 행복에 이르는 길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만족을 추구한다.그러므로 ego가 일으킨 생각은 결국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온다.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는 어떤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일은 이미 일어난 사실이다. 이것은 인연에 의해서 일어난다. 그리고 나의 ego는 비난에 대해 자기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이 생각들은 이 상황을 바르게 보는가? 이 상황을 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 아니다.
수많은 생각들은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이 생각들이 멈추고 나의 마음이 호수의 맑은 물처럼 고요할 때 나는 바르게 볼 수 있을 것이다.그러면 나는 무엇보다 먼저ego의 이야기를 멈추어야 한다. 혜민스님이 선택한 선방은 멈추는 곳이다.
선방에서 정진할 때에 몸이 작고 조용한 한 스님이 있었다. 그는40대의 늦은 나이에 출가였다. 기본교육을 받을 때에 많은 스님들이 있는 방에서 오해가 생겨 화가 난 한 젊은 스님이 앉아있는 이 스님의 뒷덜미를 들어서 끌고 갔다.
스님은 수치심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곧 생각과 감정이 그치고 맑게 깨어있는 의식 상태가 되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잠시후 젊은 스님의 화도 사라지고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그 일은 마무리되었다. 마음에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뭔가를 비평하는 나에게는 이 생각(말)은 사실인가? 이 정보는 객관적 사실인가? 나는 감정이나 이익에서 벗어나서 바르게 보고 있는가? 거듭 물어야 한다. 왜? 혜민 스님의 생활 환경은 일반 스님들과 달랐는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내적 외적 조건들을 바르게 알아야 바른 평가를 할 수 있다. Ego는 끊임없이 자기가 보고 싶은대로 보려고 한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ego의 작용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열린 마음으로 상대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고 상대의 말에 귀를 열어 두어야 한다.
모든 존재에게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한다. 내가 하는 것은 먼저 나에게 영향을 준다. 그리고 세상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나에게 돌아와서 결실을 맺는다. 그러므로 나를 행복하게 하면 또한 사회를 행복하게 한다.
나의 행복과 사회의 정의는 서로 조화를 이룬다.만약 어떤 것에 강한 부정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먼저 나의 내면을 살펴 보아야 한다. 대상은 자기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나의 감정과 생각은 나의 삶에 현실로 나타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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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공/스님· 한마음선원 뉴욕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