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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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의 시작

2020-12-15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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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르 멘델은 1822년 지금은 체코의 일부인 실레지아 지방 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꽃과 벌을 기르는 것을 좋아했지만 생계를 위해 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학비를 면제받기 위해 아우구스트 수도원의 수도사가 된 그는 교사 자격 시험에 실패하자 결국 수도사의 길을 걷는다.

수도사 생활을 하면서도 생명에 대한 그의 관심은 식지 않았다. 1856년부터 1863년까지 많은 식물을 재배하며 그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노란 콩과 파란 콩을 교배하면 그 자손은 모두 노란 콩이지만 그 자손을 다시 교배하면 노란 콩과 파란 콩이 3대 1의 비율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는 여기서 노란 콩과 파란 콩의 유전자가 섞일 경우 노란 콩의 유전자가 우세하지만 이 두 유전자를 가진 콩을 다시 교배할 경우 노란 콩 유전자와 파란 콩 유전자가 섞이는 경우의 수는 네가지며 그 중 파란 콩 유전자만 섞인 자손은 파란 색을 띄게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노란 색을 우성, 파란 색을 열성 ‘요소’라 불렀다. 그리고 1866년 이에 관한 논문을 지역 학술지에 발표했다.


부모의 특성이 어떻게 자손에 유전되는가를 밝혀낸 기념비적인 작품임에도 무명 수도사의 업적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이름은 30년이 넘게 어둠 속에 묻혀 있다 190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오늘 날 멘델이 유전학의 창시자라는데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유전학의 두번째 도약은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유전의 핵심 역할을 하는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밝혀낸 일이다. 이 때부터 유전의 메커니즘을 실증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유전학 연구는 급물살을 탔다. 그 공으로 이들은 1962년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 사태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연방 식품 의약국은 화이자가 개발한 코로나 백신의 사용을 지난 주 긴급 승인했다. 지금으로는 연말까지 2,000만, 내년 2월까지 1억명, 내년 여름까지 집단 면역에 필요한 70%의 미국인이 백신 주사를 맞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렇게 되면 가을부터는 정상 생활이 가능해질 것이다.

화이저 백신은 예방율이 95%로 효능이 우수할 뿐 아니라 개발에 들어간 지 1년도 안 돼 승인을 받는 기록을 세웠다. 지금까지는 백신 개발에 보통 10년 이상, 빨라야 4년이 최단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종전까지는 병원체를 배양한 후 약화시켜 인체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백신을 개발했다. 이 방식으로는 어느 정도 약화시켜 어느 정도를 투입해야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인 지를 알아내기 위해 비슷한 실험을 수없이 되풀이 해야 한다. 연구 개발비와 수익성도 따져야 한다. 시간이 많이 걸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백신은 병원체 자체가 아니라 병원체의 메신저 RNA를 배양하는 방법을 썼다. 이 RNA가 인체에 들어가면 코로나 바이러스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이라는 돌기를 형성하는데 인체의 면역 세포는 이를 상대로 싸우며 모양을 인식하고 진짜 바이러스가 들어왔을 때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이러스의 껍데기만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안전하면서도 항생체와 면역 체계를 동시에 가동시켜 더 강력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이다. 정부는 백신이 나오기 전 미리 구매 계약을 해 수익성 걱정을 없앴다. 메신저RNA를 이용한 백신 개발의 성공으로 지카나 에볼라 같은 다른 바이러스 백신 개발은 물론 항암 치료에도 획기적 진전이 예상된다.

앞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는 계속 전이하며 인간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고 백신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백신의 신속한 탄생은 인간은 예상치 못한 괴질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 부족한 부분은 차차 보완해 가면 된다. 만약 백신 개발에 실패했거나 수년씩 늦어졌더라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백신은 인류가 만든 모든 물건 중 가장 많이 인간의 생명을 구한 발명품이다. 코로나 백신 개발의 초석을 놓고도 이름없는 수도사로 생을 마감한 멘델의 삶을 생각해 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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