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이면 20주년이 되는 뉴욕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뉴요커가 당한 충격은 공포 그 자체였다. 2001년 9월11일 아침 출근을 하고보니 프론트 데스크 옆에 켜진 소형 TV 화면에서 쌍둥이 빌딩 위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았다는데 꼭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때 9.11 구조대의 선봉장으로서 소방대와 경찰을 독려하고 놀란 가슴 쓸어내리는 시민들을 위로한 줄리아니 뉴욕 시장은 당시 국민의 시장이자 미국의 영웅이었다, 2번째 항공기가 부딪친 수분 안에 현장에 도착하여 2만 명 이상의 생명을 구한 구출 작전들을 조정 지휘한 그는 말했다.
“내일, 뉴욕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우리는 재건할 것이고 우리는 이전에 우리였던 것보다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테러리즘은 우리를 멈출 수 없습니다. ”
루돌프 윌리엄 루이스 줄리아니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맨하탄 칼리지, 뉴욕대학교 로스쿨을 나와 직장 생활도 뉴욕에서 시작했다. 1980년대 뉴욕 남부 연방검찰청 소속 검사로 범죄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며 명성을 얻었고 1993년 제107대 뉴욕시장에 당선, ‘깨진 유리창 이론’으로 환경을 정비하고 치안을 강화하여 임기동안 뉴욕 범죄율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더구나 9.11 당시 전립선암 투병 중임에도 현장에서 진두지휘하여 시사 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고 그 다음해인 2002년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명예KBE 훈장(외국인대상 명예훈장)을 받았다.
애칭 루디 줄리아니로 불리던 그는 시장 임기를 끝내고 2008년 공화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도전했으나 실패했고 2016년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현재 트럼프의 개인변호사로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의 각종 소송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11월19일 대선 불복 기자회견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줄리아니의 두 뺨 양쪽으로 검은색 염색약이 땀과 함께 줄줄 흘러내리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12월2일에는 미시간주 하원에서 열린 대선불복 청문회에서 방귀를 참지 못해 두 번의 방귀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들리는 망신을 당했다. 그 전 10월말에는 한 코미디 프로그램의 몰래 카메라에 당해 침대에 누운 줄리아니 모습은 딱하기까지 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스캔들 관련 대통령의 사면을 청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줄리아니는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의 경질을 막후 주도한 혐의로 맨하탄 연방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아직 검찰에 기소된 것은 아니지만 향후 기소 및 유죄 가능성에 대비해 트럼프 퇴임 전 사면을 받으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줄리아니의 아들 앤드루 줄리아니는 듀크 대학 골프 선수 출신으로 2017년부터 백악관의 대외 스포츠 커뮤니티 담당업무를 맡고 있다. 주로 트럼프와 골프를 치는 일에 시간을 보내며 아버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부자가 모두 코로나19에 걸렸는데 줄리아니는 치료후 10일 퇴원하면서 트럼프 측근 유명인이라서 코로나19 치료 특별대우를 받았음을 자랑하는 주책을 떨었다. 높은 물가고에 가진 것 없어도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뉴요커들, 한 때 그들에게 든든한 신뢰를 주었던 우리의 시장은 어디로 갔는가.
세계적 도시인 뉴욕은 9.11이후 주저앉을 뻔하다가 다시 일어섰으며 올 초 코로나 진앙지로 지목되자 뉴욕 탈출 러시로 버려진 도시가 될 뻔하다가 다시 세계 경제의 중심이자 모든 분야의 최고로 돌아가고자 애쓰고 있다.
재택근무든 현장근무든 제 자리를 성실히 지키고 있고 수시로 손 씻고 마스크도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 야외식당을 열어 어떻게든지 비즈니스를 살려보려 하고 식품과 음식을 제공하는 줄이 길더라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줄리아니가 뉴요커 출신으로서 더 이상 스타일 구기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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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