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는 특이한 동물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포유류의 20%가 박쥐다. 쥐를 포함하는 설치류(40%) 다음으로많다. 박쥐와 쥐는 이름은 한 자 차이지만 상당히 다르다. 쥐는 평균 수명 2년으로 짧지만 박쥐는 40년까지 산다. 박쥐가 이토록 오래 사는 이유는 자체적으로 항암 능력이 있어 암에 거의 걸리지 않고 노화를 둔화시키는유전자를 갖고 있으며 온갖 바이러스가 기생해 살고 있는데도 병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박쥐에 바이러스가 많은 이유는 박쥐가 가장 많은 개체가 군집 생활을 하는 포유류이기 때문이다. 텍사스 브래큰 박쥐 동굴에는 2,000만 마리의 박쥐가 함께 살고 있다. 숙주가 없이는 독자 생존이 불가능한 바이러스는 모여사는 숙주를 좋아한다. 그래야 쉽게 종족을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박쥐도 항 바이러스 면역 체계를 갖추게 됐다.
지금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비드 19를 일으키는 병원체의 정식 이름은 SARS-C0V-2다. 이름에 SARS가 들어 있는 것은 2002년 동아시아를 공포에 떨게 했던SARS와 같은 계열인 코로나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2015년 중동에서 발생한 MERS도 같은 종류다. 전문가들은 이들 모두 박쥐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코비드 19 환자 통계를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통상 선진국으로 알려진 나라보다 성적이 좋은 나라가 많다는 점이다. 환자 수나 사망자 수 1위는 미국으로 2020년 12월 7일 현재 1,500만 명이 감염되고 29만이 사망했다. 한국은 감염자 3만7,000, 사망자 545명으로 훨씬 낮다. 이보다 그 나라의 감염 상태를 정확히 보여주는 인구 100만 명당 감염자와 사망자 수로도 미국은 감염자 4만5,000, 사망자 871명이지만 한국은 각 732/ 11명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들이 모여 있는 아프리카의 경우는 어떨까. 우간다의 100만 명 당 감염자와사망자 수는 485/ 4명, 마다가스카 626/ 9, 모잠비크 514/ 4, 말라위 313/ 10, 르완다 468/ 4, 말리 251/ 8, 소말리아 281/ 8, 부르키나 파소 152/ 3, 시에라 리온 302/ 9, 니제르 76/ 3, 차드 104/ 6이다. 모두 한국보다 낮다.
동남아는 더 하다. 베트남의 경우는 14/ 0.4, 대만 30/ 0.3, 파푸아 뉴기니 74/ 0.8, 캄보디아 21/ 0, 라오스5/ 0, 마카오 70/0, 코로나의 종주국 중국도 60/ 3명이다. 동남아에서 가장 가난하고 의료 시설이 열악한 나라에 속하는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코로나로 사망한 환자가 하나도 없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전문가들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동남아가 세계에서 박쥐가 가장 많이 살며 인간과 접촉이 많은 곳이라며 이곳 주민 중 상당수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자체 면역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월스트릿 저널은 지난 주말 동아시아 주민들의 코로나 감염 비율이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은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가 일상화 돼 있고 방역 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래 전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널리 퍼져 이에 대한 자체 면역이 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보건 노동 후생성의 최고 의학자인 스즈키 야스히로는 “동아시아에는 감기와 유사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널리 퍼져 왔다는 설이 있다”며 “ 그 결과 그곳 주민들은 코로나에 걸리지 않거나 걸려도 크게 아프지 않고 넘어 간다”고 말했다.
한 호주와 미국 연구팀은 중국과 일본, 베트남인의 유전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운 흔적을 찾아냈다며 동아시아인들은 2만5,000년 전부터 코로나와 전쟁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들 연구는 시작 단계로 아직 확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맞다면 동아시아 각국의 양호한 성적은 유전적 요인에 의한 것이 클 수도 있다.
500년 전 서양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손쉽게 정복한 것은 이들이 퍼뜨린 전염병 덕이 컸다. 오랜 세월 소, 돼지, 말, 양등 가축과 생활하며 이들에서 옮아온 병원체에 대해 면역이 생긴 유럽인들은 이에 대한 저항력이 없던 원주민들이 죽어나가자 이것을 자신들이 원주민보다 우월하다는 증거로 믿었다. 지금 아시아권이 이들의 잘못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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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