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르고뉴에서 쫓겨난 포도, 보졸레 와인이 되다

2020-12-02 (수) 김성실 시대의창 대표(와인 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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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실의 역사속 와인 - 포도 품종 가메의 놀라운 잠재력

‘귀양’은 죄인을 외떨어진 곳에서 일정 기간 동안 살게 하던 형벌이다. 그런데 조선 시대에 사람이 아닌 코끼리가 귀양을 간 적이 있다. 태종 때의 일로, 선물로 받은 코끼리가 너무 많이 먹을뿐더러 사람까지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책임을 물어 태종은 코끼리를 멀리 귀양을 보냈다고 한다.

와인의 역사에도 귀양살이 이야기가 있다. 물론, 귀양살이를 한 당사자는 포도 재배자도 와인 메이커도 아닌‘포도 품종’이다. 중세 때인 1395년, 프랑스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2세(Philippe II, duc de Bourgogne 1342~1404)는 자신의 공국을 둘러보다가 포도밭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가메(Gamay)’라는 품종을 멀리 쫒아내라고 칙령을 내렸다. “가메는 법률과 풍습에 위배되는 본성이 악한 품종이다. 그러니 한 달 안에 모두 베어내고, 사순절 전에 뿌리까지 뽑아버리도록!” 하루아침에 가메가‘악한 품종’이 되어 귀양에 처해졌다. 필리프 2세는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코로나19 탓에 부르고뉴에 직접 가볼 수는 없지만, 이 글을 통해 잠시 역사 여행을 떠나 보자.

지금도 부르고뉴에서는 자타 공인 세계적인 명품 와인이 생산된다. 필리프 2세 당시에도 당시 ‘본(Beaune) 와인’이라 불리던 부르고뉴 와인의 맛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이 유명세는 부르고뉴 공국의 시토 수도원 수도사들 덕분이었다. 이들은 철저하게 금욕하고 부지런하게 노동하면서 구도자의 삶을 살았다. 특히 특유의 부지런함과 꼼꼼함으로 포도 농사에 정성을 쏟았다. 잠자고 기도하고 밥 먹을 때를 빼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포도밭에서 보냈다.

수도사들은 기후와 토양의 특성을 깊이 파고들었다. ‘테루아르’에 따라 포도밭을 구획하여 담을 쌓았고, 품종을 연구해 구획에 맞는 최적의 품종을 골라 심었다. 품질을 높이기 위해 가지치기를 실험했고, 와인 맛을 시음해 비교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이들은 최고 품질의 와인을 빚을 수 있었다.

한편, 스물두 살의 필리프는 아버지인 프랑스 국왕 장 2세에게 부르고뉴 공국의 영지를 물려받아 부르고뉴 공작이 된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용담공 필리프(Philippe Le Hardi)’라 불렀다. 그가 ‘용맹하고 담대한 공작’이라 불린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백년전쟁 초기에 그는 아직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는 열네 살 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푸아티에 전투에 참가할 만큼 대담했다. 이 전투에서 그는 비록 포로로 잡히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용기를 기려 그를 용담공이라 칭했다.

시간이 흘러, 필리프 2세는 유럽 최고의 상속녀인 플랑드르의 마르그리트 3세(Margaret III, Countess of Flanders)와 결혼한다. 그녀의 영지까지 더해지자 그는 부르고뉴는 물론, 오늘날의 프랑스 북부, 벨기에, 네덜란드 남부 지역까지 통치하게 되면서 프랑스 왕실조차 어쩌지 못하는 가장 강력한 영주로 떠올랐다.

야심이 큰 그는 자신의 영지에 있는 시토 수도회에서 만드는 와인이 범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그 와인이야말로 자신에게 날개를 달아주어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 확신했다.

당시에는 와인이 일상생활에 꼭 필요했으니,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교회에서는 성찬식 때 와인이 꼭 필요했고, 귀족은 식탁에 맛 좋은 와인이 오르길 원했다. 특히 본의 레드 와인은 아비뇽유수 시절(1309~1377) 교황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교황청을 방문하는 사제단과 부유한 귀족도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프랑스 왕의 식탁에도 본 와인이 올랐다.

필리프 공작은 바로 이러한 점을 간파했다. 그는 본 와인의 상업적 가치를 높이고, 고급화를 위해 묘책을 강구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포도 품종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당시 본 와인의 적포도 품종은 ‘누아리앵’이라 불리웠다. 수도사들이 품종 연구를 거듭한 끝에 새로운 형태의 누아리앵을 선보였다. 그런데 그 모양과 크기뿐만 아니라 포도송이의 촘촘함마저 꼭 검은 솔방울 같았다. 필리프 공작은 포도의 모양에서 힌트를 얻어 그 품종을 ‘피노’로 명명했다. 피노는 훗날 피노누아(Pinot Noir)가 된다.

이름을 바꾼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피노의 가치를 높여줄 ‘마케팅’이 필요했다. 필리프 공작은 생각 끝에 크리스마스 이후로는 와인을 팔지 못하게 했다. 유럽 전역에 “본 와인을 찾는 이들이 많아 벌써 다 떨어졌다”는 소문이 돌게 한 것이다. 맛 좋기로 유명한 본 와인은 피노라는 그럴싸한 품종 이름에 더해 희소성까지 띠다 보니, 중세 최고의 명품 와인의 반열에 올랐다.

필리프 공작은 승승장구하는 본 와인을 보며 흐뭇했으리라. 그런데 어느 날 영지 내의 포도밭을 둘러보고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어느 샌가 ‘가메’라는 품종이 포도밭을 점령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엔 그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유럽 전역에 흑사병(1348~1400)이 돌았다. 이 무서운 전염병은 인구의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갔다. 농사지을 사람이 부족해지니, 사람들은 손이 덜 가는 작물을 선호했다. 1360년대부터 피노가 심어진 포도밭에도 가메 품종을 한두 그루씩 심기 시작했다. 피노와는 달리 가메는 확실히 키우기 수월했다. 날씨에 영향을 덜 받고 병충해에 더 강할뿐더러 면적당 소출량(yield)도 훨씬 많았다. 농사를 짓는 농노들 입장에서는 비록 풍미는 덜한 품종이었지만 가메를 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부르고뉴의 포도밭에는 피노보다 가메가 많아졌다.

사정은 알았지만 부르고뉴 와인의 품질 저하를 우려한 필리프 공작은 결단을 내린다. “포도밭에서 가메를 다 뽑아, 부르고뉴 밖으로 쫒아내라!”

칙령이 떨어지자 부르고뉴의 코트도르(Cote d’Or) 언덕, 특히 북쪽에 위치한 코트 드 뉘(Cote de Nuit)의 포도밭에선 가메 품종이 모조리 뽑혔다. 그런데 부르고뉴 공국의 다른 지역에까지는 칙령이 온전하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필리프 공작도 코트도르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 마을인 보졸레에는 이 정책을 강하게 고수하지 않았다. 어쨌든 일하는 당사자인 농노들의 숨통은 틔워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코트도르에서 ‘추방’당한 가메는 보졸레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귀양살이란 모름지기 심신이 고달파야 하는 법. 허나 보졸레의 테루아르가 가메 품종에는 더없이 좋은 게 아닌가. 가메는 그곳에서 완벽하게 적응한다.

여기서 잠시 보졸레를 둘러보자. 보졸레라는 지명은 10세기에 그곳을 다스렸던 영주의 이름(Beaujeu)에서 유래했다. 보졸레에서는 로마 시대부터 포도 경작이 시작되었는데, 특히 7세기 때부터는 베네딕트 수도회 수도사들이 포도 농사를 지어 기반을 닦았다. 부르고뉴와 론밸리 사이에 위치한 덕분에 대륙성기후, 해양성기후, 지중해성기후의 특징이 골고루 나타나, 다소 날씨가 변덕스럽다. 수더분한 가메에게는 이러한 날씨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그곳의 토양은 화강암이었다. 이 토양이야말로 품질이 더 좋은 가메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이었다. 가메 입장에서는 먼 길을 돌아 고향에 안착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악한 품종이라는 누명을 쓰고 쫓겨난 가메는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 누명이 끈질기게 이어져 보졸레 와인은 최근까지도 푸대접을 받았다. “가벼운 와인”, “초보자들에게나 어울리는 와인”, “맛보다 마케팅 덕에 알려진 와인”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이러한 시련은 ‘보졸레’라는 이름이 붙은 다른 와인, 보졸레 ’누보’의 한때의 인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보졸레 누보도 억울하긴 마찬가지다. 태생이 갓 만들어 먹는 와인인데, 오래 숙성해서 먹는 와인과 비교하면 어쩌겠는가. 생절이 같은 보졸레 누보를 두고 묵은지 맛이 안 난다고 욕하는 꼴이니 말이다.

아무튼, 가메로 빚은 보졸레 와인은 보졸레 누보 탓에 도매금으로 치부됐지만, 그리 만만한 와인이 아니다. 보졸레 마을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의 와인을 생산한다. 가메 역시 잠재력을 품은 포도 품종이다.

익히 알려졌듯, 프랑스 와인은 AOC라는 원산지통제명칭(또는 AOP라는 원산지보호명칭)을 쓴다. 보졸레 마을에는 12개의 AOC가 있다. ‘Beaujolais’에 복수형 S가 붙은 까닭이다.

첫째, Beaujolais(보졸레) AOC. 가장 기본 등급의 와인으로 가격과 품질이 합리적이다. Beaujolais suprieur(보졸레 쉬페리외르)라고 적힌 와인도 있다. 이 와인은 최소규정 알코올 도수가 0.5% 더 높지만, 보졸레 AOC 기본 등급 와인과 동급이라고 보면 된다.

둘째, Beaujolais-Villages(보졸레 빌라주) AOC. 보졸레 마을의 토양과 기후는 북쪽과 남쪽이 다르다. 보졸레 빌라주 와인은 화강암 토양으로 이루어진 북쪽 38개 마을에서 생산한다. 보졸레 AOC에서 생산하는 와인보다 상위 등급이다. 보졸레 빌라주 AOC 와인에는 마을 이름을 별도로 표기하는 것도 있다(Beaujolais-named Villages). 예를 들면 Beaujolais-Lantigni(보졸레+랑티니에 마을)처럼 표기한다.

보졸레 10개 마을에서 생산되는 보졸레 크뤼 와인들. 생타무르, 쥘리에나, 셰나, 물랭아방, 플뢰리, 쉬르블, 모르공, 레니에, 코트 드 브루이, 브루이. 사진 Flatiron Wines & Spirits

셋째, Crus-du-Beaujolais(크뤼 뒤 보졸레) 등급. 보졸레의 10개 크뤼에서 생산되는 보졸레 최고급 와인으로 크뤼마다 AOC를 부여받았다. 10개의 크뤼 와인은 개성이 뚜렷할 뿐만 아니라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는 부르고뉴 피노누아 와인과 구분이 어려울 만큼 맛과 품질이 좋다. 한마디로 맛있는 와인이다. 이 10개 크뤼 와인에는 각 크뤼 이름만 적혀 있을 뿐 Beaujolais라는 표기가 없어, 크뤼 이름을 모르면 보졸레에서 생산한 와인인지 알 수 없다. 다행히 요즘은 병 뒤에 붙은 레이블에 별도로 ‘Crus-du-Beaujolais’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권투에서는 헤비급과 라이트급 선수를 같은 링에 세우지 않는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피노누아로 만든 최고급 부르고뉴 와인과 가메로 만든 보졸레 크뤼 와인을 놓고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가격이 비슷한 부르고뉴 와인과 보졸레 크뤼 와인의 맛을 비교해 보시라. 합리적인 가격에 뛰어난 가성비로 만족을 주는 와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타지를 고향으로 만든 힘은 무엇일까. 각자에게 맞는 땅이 따로 있는 걸까. 창밖의 서울이 낯설어지는 날에는 보졸레를 마셔야 한다.

<김성실 시대의창 대표(와인 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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