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포도는 높은 당도가 필수다. 포도의 당도를 높이려면 평균 연 1,600시간 이상의 뜨거운 햇빛과 2,500시간의 고온(섭씨 28도 이상)과 여름이 시작된 석 달 동안 600밀리미터의 집중적인 비가 필요하다.
이런 완벽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기후가 과연 가능할까. 물론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혜로운 농부는 어떤 악조건하에서도 포도나무가 잘 적응하고 자라날 수 있도록 산비탈 척박한 땅에 깊이 심고, 헝그리 정신이 묻어나도록 엄하게 키운다. 말하자면 일부러 테루아(terroir)의 조건을 열악하게 만들어 포도나무가 스스로 강한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하게 만든다.“(젠스 플리웨의 ‘From Grape To Wine’ 중에서)
사람이 이루는 일도 포도농사와 비슷하다. 대부분의 위대한 예술작품이나 문학작품이 평안하고 형통할 때 나오지 않았다. 불같은 시련의 용광로 속에서 위대한 작품은 탄생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은 번연이 12년 동안 감옥에 갇혀있을 때 형성된 작품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 ‘죄와 벌’,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는 시베리아 유배기간 동안 구상되었다.
신약성경의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바울의 옥중서신으로 유명하다. 주후 1세기 중반 무렵에 살았던 바울은 로마제국의 안방과 같았던 지중해 연안을 넘나들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옥에 갇히며 불같은 시련을 당했다. 이때 기록한 옥중서신이 지금까지 남아 신약성경의 근간을 이뤘다.
인생을 잘 사는 법은 꼭 포도농사와 같다. 포도농사꾼은 일반 농부와 장인으로 나눈다. 장인이 보는 눈과 일반 농부가 보는 눈은 사뭇 다르다. 장인은 뒤집어서 핵심을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녔다. 장인은 나쁜 테루아가 반드시 나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극심한 가뭄과의 싸움, 갑작스런 추위와 서리로 인한 고통, 병충해로 인한 시련도 얼마든지 최상의 테루아가 될 수 있다고 장인은 맏는다.
시베리아 옴스끄 노동 수용소 감옥에서 살아남은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했다. “감옥에서의 삶은 내 안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을 파괴했지만 성경은 새로운 나를 창조했다.” 부러진 뼈가 완치되면 전 보다 더 강하고 조밀한 새 뼈가 생성된다. 시련 중이라도 헝그리 정신으로 단단히 무장하면 전 보다 더 강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
<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