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의 가족들

2020-11-24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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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한 후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르는 사람은 트럼프만이 아니다. 장녀인 이방카도 수사 대상이고, 차남 에릭도 지난달 탈세 혐의 등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부친, 즉 이방카의 시아버지 찰스 쿠슈너는 10여년 전 탈세와 증인매수 등의 혐의로 연방형무소에서 2년 실형을 산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면한 혐의는 잘 알려진 대로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가장 중대한 혐의는 트럼프재단의 불법 재무처리다. 트럼프와 그의 4개 회사(골프클럽, 트럼프타워, 호텔 등)가 대출 및 보험사기, 탈세, 재무기록 조작을 했다는 혐의다. 이어 대통령직을 이용한 사익추구 혐의, 2명의 여성이 고소한 성폭행과 명예훼손 혐의, 불륜관계를 맺었던 여성 2명에게 입막음 돈을 준 뒤 재무기록을 위조한 혐의, 그리고 조카 메리 트럼프가 낸 재산상속 불법 탈취 혐의 등이 있다.

이들과 관련해 청구된 영장만 30건이 넘는데 이 모든 소송과 수사를 막거나 지연시켜준 것은 ‘현직 대통령’이란 특권이었다. 백악관을 떠나는 순간 그 보호막이 사라지고 민형사소송이 봇물 터지듯 밀어닥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가 지난달 유세 중에 “재선에 지면 나는 이 나라를 떠나야할 것”이라고 했던 말은 실제로 절박한 위기의식을 담은 고백에 가깝다.


때문에 트럼프가 남은 두 달의 임기 동안 형사처벌 위기에 몰린 측근들을 모두 사면하고 자신도 ‘셀프 사면’할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물론 대통령의 자기 사면이 법적으로 가능한 지에 대해서는 법조계의 해석이 분분하지만.

이방카에 대한 혐의는 자기소유의 컨설팅회사를 통해 트럼프 그룹으로부터 74만7,622달러의 자문료를 받은 것이다. 당시 이방카는 트럼프 그룹의 임원이면서도 자문료를 받아 챙겼는데, 검찰은 트럼프가 자문료란 명목으로 불법 증여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트럼프는 2010년부터 2018년 사이에 2,600만달러의 ‘정체불명’ 자문료를 절세 비용으로 처리했는데 이 가운데 일부가 딸에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차남 에릭은 트럼프 기업의 부사장으로서 탈세 혐의 등과 관련해 대선을 앞두고 검찰 조사를 받았다. 트럼프 기업이 대출 및 보험과 세제혜택을 누리기 위해 불법적으로 부동산의 자산 가치를 부풀린 혐의다.

한편 부동산개발업자인 트럼프의 사돈 찰스 쿠슈너는 2005년 탈세와 불법 선거자금 기부, 증인매수 등 18개 범죄혐의에 대해 유죄를 시인하고 연방형무소에 수감됐다. 2년 실형을 선고받았을 만큼 중한 범죄는 파렴치한 협박이었다. 자신의 탈세 수사에 협조한 여동생의 남편(매제)을 협박하기 위해 매춘부를 고용, 매제를 유혹하도록 하고 이들의 성관계를 동영상으로 찍어 여동생에게 보냈던 것이다.

이 모든 혐의들이 ‘돈에 관한 사기’라는 점에서 트럼프 가의 파렴치한 탐욕의 끝을 보는 듯하다. 아버지, 아들, 딸, 사돈을 가리지 않는 총체적 범죄 가족이 지난 4년간 백악관에서 주요 직책들을 꿰차고 앉아 나랏돈은 물론 수많은 국내외 기업들로부터 금품을 갈취한 혐의들은 앞으로 법정에서 하나씩 밝혀질 것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정치 경력이라고는 전무한 딸과 사위를 각각 대통령 선임고문과 백악관 선임보좌관이라는 최고위직에 앉히고 나라를 가족기업처럼 운영해왔다. 미국 연방법이 대통령 친인척의 공직 기용을 금지하고, 쿠슈너가 부동산개발사 및 언론사 등 많은 사업체들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충돌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정실 인사’를 통해 ‘문고리 권력’을 형성해온 것이다. 이후 “백악관에서 가장 입김 센 사람은 사위 쿠슈너”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았고, 안하무인인 이들 부부의 존재가 백악관 내부의 기강을 흐리고 있다는 비판도 계속 제기되어왔다.

요즘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 재출마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도 한숨짓는 모양이다. 그런데 정작 걱정해야할 것은 고령의 도널드 트럼프가 아니라 새파랗게 젊은 그 자녀들일지도 모른다. 장남 트럼프 주니어와 장녀 이방카가 아버지에 이어 대통령 자리를 탐내고 있다는 보도가 솔솔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9일 백악관 인사이더를 인용해 “이방카가 2024년 대선 출마를 노리고 있다”면서 “그는 부친이 취임한 첫날부터 대통령 자리에 눈독을 들였다”고 보도하고, 아울러 “트럼프 주니어 역시 자신이 대통령 자리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미국 대선이 아이들 장난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분탕질해놓은 판에 자녀들까지 뛰어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피로감이 몰려온다. 게다가 트럼프의 둘째 며느리 라라 트럼프가 2022년 노스캐롤라이나주 연방 상원의원 출마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니, 앞으로 트럼프란 라스트네임이 오래도록 워싱턴 정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까 걱정스럽다. <논설위원>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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