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드 테스트를 했다. 우리 부부는 웨체스터에서 아들네는 맨하탄, 딸네는 브루클린에서 각각 한 나절을 소비하면서 테스트를 받은 이유는, 가족 여행을 위해서였다.
코비드 세컨드 웨이브 곡선이 살짝 뜨기 시작할 무렵, 다행히도 허드슨 밸리 북쪽 지역은 감염률이 무척 낮아, 테스트 결과 ‘네가티브’를 믿고 감행을 한 것이다. 차로 약 두시간 거리여서 부담 없이, 가을의 끄트머리를 즐겨보자는 생각이었다.
여행이 줄어 에어비엔비도 타격이 크다고 들었는데 뉴욕 시와 가까운 이 지역은 오히려 예약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다행히 9개월짜리 아가와 함께 온 가족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베드 룸 4개의 에어 비엔비(Airbnb)를 찾았다.
하룻밤에 약 400 여 달러, 청소비용 등을 다 합한 2박 3일 숙식비는 호텔에 비해 무척 저렴했고, 세 가족이 한 지붕 아래서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점은 과히 호텔과 비교가 안된다.
체크 인 까지 시간이 충분해서 우선 약 한 시간 거리인 킹스톤( Kingston)에 들렸다가 그 곳에서 한 20분 더 가, 등대로 유명한 서고티스(Saugerties)로 갔다. 등대는 문을 닫았고, 예쁜 카페와 앤티크가 있는 메인 스트릿에도 문 닫은 가게가 많았고 마스크를 한 사람들이 몇 명 눈에 띌 정도였다. 거기서 또 20분을 더 북쪽으로 올라가 목적지 캐츠킬에 도착했으니, 늦가을 한적한 허드슨 강변 길을 한가롭게 구경한 셈이다. 개울과 작은 호수들이 널려있는 캐츠킬은 언덕 길이 많은 명실공히 산 속 마을이다.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가니 우리가 빌린 집이 불쑥 나타났다.
두 그루의 소나무 사이에 걸려있는 빨간색 해먹(Hammock)과 모닥불 피우는 자리가 있는 넓다란 정원, 바로 뒤로는 산등성이가 병풍처럼 둘러있다. 아. 이거구나. 전염병과 대통령 불 승복으로 뒤숭숭한 속세를 떠난 기분이... 긴 숨을 내쉰다.
아들 딸 부부가 동네 구경을 나간 사이에 아가를 실컷 안아 보았다. 창 밖으로 노란색 낙엽이 비가 쏟아지듯 떨어지는 광경을 내다보며 아가가 아, 아, 손을 막 흔든다. 아가와 내가 한 마음이 되는 순간이다.
밤 하늘 아래서 바비큐를 하고 늦도록 와인을 마시며 휴일같은 휴일을 보냈다. 마지막 날, 임신 8개월 딸이 만들어주는 오믈렛 디럭스로 아침을 먹을 때는 온 몸이 평온함과 편안함에 푹 젖어있었다.
산 정기로 단단히 무장된 마음으로, 코비드 곡선은 높이 올라가고 있고 대통령은 안 내려 갈려고 징징거리는 속세를 향해 87번 하이웨이를 기분 좋게 달려 내려왔다.
코비드 파티크(Fatigue)라고들 한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연말 연시가 순서대로 다가오는데 이렇게 비정상적인 일상을 더는 못하겠다는 심정들이다.
그러나 화이자, 모더나 백신의 소식이, 가까히 가보지는 못한 소거티스의 등대 불처럼, 멀리서나마 반짝이고 있다. 조금 더 참자. 이번 겨울을 견뎌내고 내년 봄까지 아니 모든 것이 안전해질 때까지 마음을 조금 더 졸라매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미 대륙의 빨간 색의 주(州)들이 바이든 승리로 파란 색으로 바뀌었듯이, 지금 코비드로 새빨갛게 물든 미국 대륙이 서서히 옅은 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좀 더 이렇게 가야겠다.
내년 여름에, 코비드 백신을 맞고, 한번 더 허드슨 밸리의 방 많은 에어비엔비로 손자 손녀 데리고 훌쩍 가족여행을 다녀오기를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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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려/ 한국일보 웨체스터 전 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