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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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 존중

2020-11-23 (월)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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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첫주에는 밤잠을 설친 날이 여러 날 되었다. 화요일 선거날 밤부터 시작해 당선자 윤곽이 드러날 때까지 며칠간 저녁마다 TV 화면과 인터넷을 통해 개표 상황을 파악하느라 잠을 계속 놓쳤다.

그러나 사실 밤잠을 설치기 시작한 건 선거일 바로 전날 밤부터였다. 월요일 밤에 삼성화재배 월드바둑 마스터스 결승전 제 2국이 미국 동부시간으로 밤 9시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한국의 제 일인자인 신진서 9단과 중국 최고의 커제 9단 사이의 3판2승 결승 시리즈에서 신 9단이 1국에서 졌기에 2국에서는 꼭 이겼어야 했다. 그런데 5시간의 혈투 끝에 아쉽게도 신진서가 반집 차이로 패했다.

종반에 들어갈 무렵 유리했던 신진서가 초읽기에 몰리면서 조금씩 손해 보기 시작하다가 결국 가장 적은 집 차인 반집으로 지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로 보던 나는 허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억울했다. 특히 바로 전날 열렸던 1국에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졌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1국에서는 신진서 9단의 착수 과정에 컴퓨터 ‘마우스 미스’가 있었다. 두 기사의 대국은 코로나 바이스 감염 우려 때문에 화상으로 진행되었다. 즉 대국 당사자들이 중국과 한국에 떨어져 있으면서 모든 착수를 컴퓨터 화면에 마우스를 사용해서 해야 했다.

그런데 신진서 9단의 대국 초반 제 21수가 죽음선이라고 불리는 바둑판 가장자리 선에 두어졌다. 그 선에 착수는 바둑의 종반에서나 두어진다. 초반에는 생각할 수 없는 자리이다. 그런데 다른 곳에 착수하려고 마우스를 움직이는 과정 중 마우스 오작으로 그만 1선에 착수가 되고 만 것이다.

그 수를 본 사람들 모두 아연실색 했다. 상대 기사도 믿을 수 없다는 듯 한동안 대응을 못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한 번 착수된 것은 다시 거둘 수가 없다. 그것이 규칙이다.

사실 바둑 규칙들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도 철저하게 지켜지는 것을 그 전에도 몇 번 보았었다. 상대 기사는 어이없는 실수임을 알면서도 물러주지 않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두면서 그냥 돌들을 잡아 이기고 마는 것이었다. 규칙에 따라 두는 것이었다.

이번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정말 치열했다. 그러나 이제 개표 결과가 승자가 드러났으면 규칙과 전통을 존중하는 모습을 모두가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소송 제기는 후보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리이다. 그렇지만 변호사들은 클라이언트가 원한다고 무조건 소송을 제기해선 안 된다.

소송제기에 있어 변호사들이 지켜야 할 규칙들 가운데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실제로 소송 제기하기 전에 클라이언트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사실적 증거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파악해야할 책임이 변호사들에게 있다. 그러한 파악 없이 소송을 제기한다면 그것은 규칙 위반이며 ‘생떼’에 불과하다. 생떼에 국민들이 볼모로 잡혀서는 안 된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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