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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맞는 감사의 계절에…  

2020-11-23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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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으로 두문불출 하다시피 지낸 게 몇 개월인가. 시간도 공간에 갇힌 느낌이다. 그런 가운데 일상은 박제화 됐다고 할까. 그래도 세월은 저만치 앞으로 달려간다. 11월인가 했더니 벌써 하순이고 추수감사주간이다.

또 다시 맞는 감사의 계절. 그러나 들려오는 소식은 흉흉하기만 하다. 겨울을 재촉하는 찬바람과 함께 코로나 바이러스가 또 다시 휩쓸고 있다. 추위도 추위지만 병마의 창궐로 얼마나 혹독하고 긴 겨울이 될 것인지.

대선이 끝난 지 3주가 되간다. 그 뒤 끝에 전해지는 뉴스들도 음울하기만 하다. 선거결과 불복에, 대대적 시위, 폭동, 재개표, 법정소송 등. ‘미국이 맞나….’ 신음이 절로 나온다.


대선을 통해 드러난 미국의 정치 기상도도 그렇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옛 미국’의 모습은 사라진 것 같다. 초대형 폴트 라인(fault line)이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는 생경하고도 불안한 모습의 미국이 새삼 클로즈업되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일탈에 가까운 심각한 미국의 분열상.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단순한 민주 대 공화, 진보 대 보수의 구분법만으로는 설명이 잘 안 된다.

“한 쪽에서는 계속 세속화의 길을, 다른 한 편에서는 더욱 종교적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의 미국이다.” 리얼 클리어 릴리전(RCR)의 지적으로 미국 사회 저변의 영적 흐름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전체 인구의 1/3에 조금 못 미치는 미국인은 고도로 종교적이다. 주일성수는 물론이고 다른 교회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다른 1/3은 완전히 세속적이다. 교회와는 담을 쌓고 산다. 또 다른 1/3은 명목적인 종교생활을 한다. 가끔 예배에 참석하지만 헌신도는 낮은 편이다.”

RCR이 휘틀리 인스티튜션의 최근 조사결과를 인용해 그려낸 대체적인 미국의 영적 지도다.

‘한 때 기독교 국가였던 나라들이 날로 세속화 되어가고 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 자체가 교회로 불렸던 유럽에서 이미 목도된 현상이다. 미국도 같은 흐름을 타고 있다.

“1981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은 선진국 중 가장 종교적인 나라로 분류 됐었다. 이후 종교와 무관하다고 밝힌 미국인은 급격히 늘었다. 1991년 6%에 불과했던 그 수치는 오늘날 25%를 넘어섰다.” 포린 어페어지의 보도다.


이와 함께 포린 어페어지는 가치관과 종교와 관련된 기존 상식을 깬 현상을 적시해 밝히고 있다. 종교적 신념이 정치적 관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관점이 종교에 대한 신념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활발히 전개된 기독교우파의 적극적 정치참여는 진보와 중도 유권 층,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유발, 대대적인 교회이탈 현상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휘틀리 인스티튜션의 보고서의 포인트는 그렇지만 다른데 있다. 종교적이다, 그러니까 기독교임을 밝힌 미국인 수가 21세기 들어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소수화 되고 있는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교회 식으로 표현하면 ‘더 뜨거워지고 있는 현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구체적으로 밝히면 8,500여만의 미국인은 고도로 종교적인 반면 1억에 가까운 미국인들은 세속적이라는 것. 문제는 이 두 집단이 영(靈)이 점차 서로 달라가고 있다고 할까 하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레드 스테이트 지역 공화당 유권자들의 78%는 기독교가치관이 포위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응답을 한 것.

그 경향은 올 대선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기독교인, 그 중에서도 복음주의 백인 기독교인의 78%는 트럼프를 지지한 반면 무신론자 등 종교와 무관하다고 밝힌 미국인의 83%는 바이든을 지지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 두 그룹은 공교롭게도 지역적으로도 분리돼 있다. 대서양과 태평양 양안 지역이 세속화 지역이라면 남부에서 중서부로 이어지는 내륙지역은 기독교 지역이다. 이처럼 지리적으로도 분리된 상황에서 두 그룹은 서로 다른 미국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세대를 걸친 문화전쟁은 계속 확산되면서 미국의 분열상은 더 심화될 것인가. 반드시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 RCR의 지적이다.

세속화의 미국과 기독교의 미국. 이 둘은 안정적인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올 대선 결과 드러났다. 그 사실을 인정할 때 오히려 두 세력 간의 데탕트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름에서가 아니다. 정치적 다원주의는 미국의 최대 강점으로 미국을 예외적인 나라로 만들어온 경험이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그 희망의 가능성은 대통령 당선자 바이든의 발언에서부터 찾아진다. “서로를 악마화 하던 암울한 시대는 이제 끝낼 때가 됐다.” 대통령 당선자로서 그의 첫 발언이다. 전 미국이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고 통합할 것을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동시에 정치보복은 없다는 시그널이 바이든 진영에서 계속 전해지고 있다.

자성의 목소리는 그리고 곳곳에서 들려온다. 우파논객이 우파의 완고성을 비판하고 진보언론이 좌파의 편협함을 질책하는 등.

희망의 메시지는 바이러스 방역전선에서도 들려오고 있다. 잇단 백신개발 성공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종식 상황도 이제 머지않았다는.

Happy Thanksgiving!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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