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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의 시간여행 17. 시계 이야기 #11 물시계(상)

2020-11-15 (일) Jeff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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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비를 멈출 것인가?

제프의 시간여행 17. 시계 이야기 #11 물시계(상)
제프의 시간여행 17. 시계 이야기 #11 물시계(상)

군대 주차장에서 당시 돌려차기 모습을 재현하며 자랑하던 모습. 쓰러지는 사람은 훈련소에서 만났던 안 일병. 그는 한국군도 제대하고 대학까지 졸업한 사람이었지만 미국에 와서 다시 미군 생활을 시작했다.


앞으로 할 이야기들은 실화이며, 또한 사랑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남녀 간의 그런 달캉달캉한 이야기는 기대 안하시기 바란다. 이 이야기들은 남자이기에 언제, 어디선가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그래서 이제야 남자라고 혼자서 묵묵히 걸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다다른 남자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오마주(Homag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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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가 수많은 작은 모래알들의 모임이라면 물 시계는 한 잔의 단일 단위(single unit)이다. 군대란 여러 명이 일사분란 하게 움직여야는 조직 사회이며 군기(esprit de coup)가 생명이다. 그리고 물 흐르듯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상명하복 조직이다. 물이 위로 거슬러 올라 갈수는 없는 일이다.


나의 군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서투른 영어 실력이었고 두번째 힘든 것은 이해하기 힘든 미국문화였다. 누구나 조직의 한 부분으로 열심히 일하고 인정받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하려고 해도 방해하거나 딴지를 거는 이들이 어느 조직에나 존재한다. 사회 생활에서 절대 주의해야 할 인간들이 뒤통수 치는(a snake in the grass) 인간들이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 맨발로 잔디숲을 여유롭게 걷다 뱀에게 물려본 사람, 믿던 이에게서 비수를 맞아본 사람만 이해한다. 조직에서는 그런 자들에 의해 때때로 흐르는 물이 막히기도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미군 훈련소(Basic Training)
훈련소에서는 알아 들을 수 없는 구호 와 명령 그리고 규칙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기압도 받았다. 훈련소에는 나 이외에 동양인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감옥과 같은 훈련소에서 미국이란 나라는 약육강생만이 존재함을 뼈저리게 배웠다. 영어를 못한다고, 문화를 모른다고, 어느 누구 하나 봐주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모두 자기 살기에 급급한 상황. 그런 곳에는 하이에나처럼 상처입은 약자를 물어뜯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야비한 놈들이 존재한다. 가장 참기 힘들었던 것은 인종차별을 곁들인 비열한 놈들이 공격해 올 때이다. 그때까지 유순하고 모든 일에 순종적이던 내 성격이 공격적으로 바뀐 계기는 군 생활의 경험이었다고 생각된다.

#짱의 추억
낯설은 군 문화에 힘겹게 적응할 때 ‘뱀눈’을 한 백인녀석 하나가 계속 내무반 하사에게 나에 대한 고자질을 해대고 있었다. 화장실에서나 막사 뒤에서 한판 맞장을 떠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격투 훈련(Combat Training) 받을 기회가 왔다. 당시 권투 문화였던 미국은 훈련병들이 글러브를 끼고 맞짱(Man-to-man)을 떴다. 그러나 나는 어릴 때부터 배달민족의 태권도로 단련된 사람이었다. 하사관이 내 이름을 호명했다. 군에서는 모든 것이 알파벳 순서다. 안(Ahn)씨인 나는 늘 제일 먼저 호명됐다. 이때의 경험 때문인지 나는 두려움(Stage Fright)이 없는 편이다.

하사관이 누구인가를 호명하려는 그 순간. 내 글러브가 그 ‘하이에나’를 지목했다. 나의 예기치 않은 행동에 하사관 (Drill Sergeant)이 의미심장한 입가 웃음을 짓더니 그 녀석을 중앙으로 불러냈다. ‘뱀눈’이 기다렸다는 듯이 오른손 훅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의 몸 중심이 힘에 쏠려 기우는 찰나 내 오른쪽 군화발이 그 녀석의 사타구니 사이로 쳐 박혔다. 작렬하는 한방이었다. 전 중대원들의 눈이 마치 목각 인형의 큰 눈과 입처 럼 화들짝 오픈됐고 곧바로 이어진 탄성. 급소를 가격당한 ‘뱀눈’은 마치 썩은 고목처럼 쓰러졌다. 놈의 몸은 송충이 고부라지듯 C자 형으로 바닥에 버려져 오그라들었다. 나는 한편으로 락키(Rocky) 처럼 두 팔을 들어 보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뒤탈이 겁나서 자제했다.

하사관이 급소를 가격당한 그녀석을 체크하고 그날의 격투 훈련은 그렇게 끝났다. 특무 상사에게 불려간 나는 위급한 상황에서 한국 사람은 태권도가 본능처럼 나온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전투에서 어느 누가 글러브를 끼고 권투하듯 하냐고 말했다. 상사가 빙그레 웃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뱀눈’의 고자질이 중단됐고 나를 대하는 중대원들의 태도도 급변했다.

#스파이크 골프 신발
얼마 후 우연히 PX 판매점에서 아주 특이한 구두를 발견했다. 신사 구두 밑창에 수많은 쇠창이 박혀있는 것이었다. 골프화를 본적이 한번도 없던 나는 싸울 때 아주 좋은 무기로 여겨져 구입했다. 나는 근무가 끝나면 바닥에 왁스가 반들반들 매겨진 군 막사 안에서도 그리고 일반 길에서도 그 스파이크(Spike) 달린 골프화(Golf Shoes)를 신고 다녔다. ‘딱딱’ 거리는 쇠소리가 시끄러웠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시비거는 친구들이 없었다. 쇠 밑창 골프신발(Metal spike golf shoes)을 신고 거리를 활보하는 동양 청년이 미국 골퍼들 눈에는 얼마나 우스웠을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지 않던가.

한국전에서 함께 공산당의 침략에 피 을 나눈 형제들이며 지금도 수많은 한미 병사들이 다 함께 휴전선을 지키고 있건만 군대에서 개인적인 문제로 싸움박질이나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나에게 발길질을 당했던 그 친구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표한다. 당시 내 대처 방식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물길을 막는다면 물리적으로 풀어주어야 한다. 물시계 역시 유유히 흘러주어야만 그 기능을 다 할수 있다.
<다음에 계속>
글·사진/ Jeff Ahn
(jahn8118@gmail.com)

<Jeff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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