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화가는 빈 여백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무슨 색칠을 하든지 표면을 채우고야 만다. 하지만 세잔((Paul Cezanne)은 여백을 비운 채로 보존하려고 애썼다. 세잔에게 그림이란 무엇을 채워야 할 무엇이 아니라 무엇을 비워야 할 무엇으로 보았다. 이것이 바로 추상력이다.
세잔의 추상력은 형식보다 진정성을 중요시 하는데서 싹텄다. 세잔은 사과 하나의 진정성을 얻기 위하여 주변에 있는 테이블보, 벽, 혹은 커튼 따위를 미완성으로 남겨놓곤 하였다. ‘포기, 비움, 배제’는 추상화로 나가는 첩경이다.
추상성 하나로 세잔은 사과 정물화의 대가가 되었다. 세잔이 그린 사과 정물화는 다른 화가가 그린 것과 사뭇 다르다. 보통 사과가 아니다. 세잔의 사과는 추상성에 의해서 특이한 빛을 발하고 있다. 고고하다. 투명하다. 엄숙하다. 함부로 먹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발길을 그 앞에 오래 머무르게 만든다.“(잉고 월터의 ‘Impressionism’ 중에서)
추상력(抽象力). 복잡하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다듬고 단순화하여 핵심을 드러내는 제련 능력을 말한다. 추상력은 표면의 배후에 깊이 갇혀있는 보화를 밖으로 끄집어내어 드러낼 때 그 빛을 발한다.
예술가 시인, 과학자가 주로 하는 일이 추상화 작업이다. 그들은 복잡한 전체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본질을 표현하려고 심혈을 기울인다.
출애굽의 영웅 모세는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었다. 모세는 한때 실패자였다. 기껏해야 광야에서 양치는 목동에 불과했다. 모세의 실패는 능력의 실패가 아니었다. 모난 성품을 다듬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모세가 지닌 모난 성품을 도리질하고 다듬는 데 40년이 걸렸다. 40년 후 모세가 얻은 것이 무엇인가. 추상력이다.
추상력이란 그냥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하게 제거하고 꼭 필요한 요소를 살려내어 끊임없이 자기의 것으로 다듬어 나갈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추상성을 얻는다.
신앙의 세계에서 추상력은 큰 의미를 지닌다. ‘내려놓음’, ‘비움‘, ‘포기’는 영적 추상력에 해당한다. 모세, 아브라함, 바울, 세잔처럼 내 삶 언저리에 붙어있는 불필요한 것을 과감하게 도려 낼 수 있는 사람은 참 리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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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