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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인단 혈투

2020-11-04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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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미국이 배출한 대통령 58명중 초박빙을 보였던 5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인단 투표 결과 탄생한 대통령의 미국 유권자 총 득표수는 오히려 뒤지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 대선의 경우 만약 한국에서처럼 머릿수대로 세는 일반 투표였다면 마땅히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되었을 것이다. 미국인중 48%가 힐러리에게, 46%가 트럼프에게 투표했기 때문이다.

올 대선에서도 이런 상황이 연출되지 않으란 법이 없다. 이제 2020년 미국의 대선은 끝났다. 결과는 선거인단의 투표가 마감돼야 확실하게 나올 것이므로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미 대선은 유권자들의 직접선거로 선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 선거인단 수는 538명인데, 이는 435명의 하원의원과 100명의 상원의원 숫자를 합한 535명에 워싱턴 DC 선거인단 3명을 합한 것이다. 미국 헌법 2조 1항 2절은 선거인단 숫자와 선출방식을 기술하고 있다. 선거인단의 숫자는 각 주들의 인구 비례에 따라 결정된다는 내용이다.


각주마다 선거인단의 표를 총 유권자 득표수가 가장 많은 대통령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몰아주는 방식이어서 유권자의 직접 투표수에서는 지고도 더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일이 수학적으로는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2016년과 2000년 대선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 2000년 미 대선 선거 당락이 대법원에 의해 판가름 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민주당 부통령 앨 고어와 공화당 텍사스 주지사 조지 부시가 맞붙었고, 개표후 재검표가 이루어지고 논란 끝에 연방대법원이 대통령 선거의 승자를 결정하게 되었다.

고어 후보는 뉴멕시코주에서 아주 근소한 300여표 차이로 승리했다. 하지만 선거 당일 밤, 마지막 박빙이었던 플로리다 선거 결과를 선언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새벽 발표된 결과는 0.1% 차이로 부시가 우세했다.

그러나 플로리다 선거법에 따르면 격차가 0.5% 이하일 경우 재검표를 의무적으로 해야 했다. 고어측은 수검표를 요청했고, 주 대법원은 전체 수검표를 명령했다. 그러나 부시가 연방 대법원에 상고해 마침내 연방대법원은 5대4로 플로리다 주대법원의 재검표 진행 결정을 뒤집으며 재검표를 중단시켰다.

플로리다 주정부가 당초 선언했던 537표 차의 부시 승리를 인정한 것이다. 결국 플로리다 주를 손에 넣은 부시가 선거인단 득표수에서 271대 266으로 승리, 일반 득표에서 50만표를 앞선 고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고어후보는 국민의 단합과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패배를 인정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미국은 각 지역별로 투표용지도, 개표방식도, 선거관리 원칙도 제각각이다. 정치적 성향이 극명하게 갈리는 플로리다에서는 표차가 불과 몇백여표 밖에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막판에 개표했던 플로리다에서의 개표과정이 명확치 않아 말이 많았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유권자 투표에서는 힐러리에게 3% 뒤졌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승리하면서 미국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힐러리는 총 일반득표수에서 트럼프를 280만표나 앞섰지만 트럼프는 위스콘신, 펜실베니아, 그리고 미시건에서 심지어 0.2%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김으로써 총득표수에서 수백만표나 뒤졌던 트럼프가 선거인단 득표수에서 304대 227로 승리함으로써 대통령이 되었다.

이번에도 연방대법원까지 가는 상황이 돼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다. 모든 등록된 유권자들이 COVID-19 동안 우편 투표지를 우편으로 받았고, 투표용지를 우편으로 송부할 때는 2020년 11월 3일까지의 소인이 찍혀 있으면 유효로 인정된다고 하니, 코로나사태로 우체국 시스템이 이미 느려진 상황에서 당락을 결정할 수 있는 수십만표가 문제의 소지가 되지 않을까. 우편투표 과정에서 조작이나 실수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우편투표 시행에 반대해 왔고 민주당은 지지해왔기 때문에 이념적으로도 갈등의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어느 때보다도 치열할 이번 대선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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