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당신 한 표의 역사적 무게

2020-10-21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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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앵무새처럼 외쳐대며 자신의 대한 지지를 호소한다. 진부한 클리셰이긴 하지만 다른 선거들에 비해 더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선거는 분명히 있다. 결과에 따라 권력교체가 일어나고 국가의 미래 진로가 바뀐다. 전쟁이나 비극의 와중에서 치러지는 선거는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기도 한다.

차기 미국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다음달 3일 치러지는 대선은 “정말” 우리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다. 그만큼 지금 미국은 전대미문의 대혼란에 휩싸여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최악의 보건 및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미래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다. 또 사회는 극심한 분열로 유례없는 갈등과 대립을 지속하고 있다. 비뚤어진 신념에 사로잡힌 반이성 세력들의 준동은 날로 극심해지고 있다. 과연 한 나라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런데도 나아지리라는 전망과 희망은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도무지 미래를 가늠하기 힘든 불확실성과 대혼돈 속에 치러지는 11월3일 선거의 의미와 중요성은 그래서 이전 선거들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사실에 유권자들도 같은 생각을 나타낸다. 퓨리서치 조사에서 “이번에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지는 지난 수십 년 간 치러졌던 어떤 대선보다도 중요하다”고 응답한 응답자의 비율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높았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공통적이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물론 다르겠지만 말이다.


2017년 대통령에 취임한 트럼프 4년은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대선기간 내내 계속된 진흙탕 싸움의 후유증, 그리고 각종 의혹과 논란의 여파였다.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로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선언하는 엄숙한 정치행사이자 국민적 축제가 돼야 할 그의 취임식은 어수선한 가운데 치러졌다. 당시 본보는 특별사설을 통해 새 대통령에게 “왜 트럼프 4년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과 두려움이 커지고 있는지 그 이유를 잘 헤아리길 바란다”며 무엇보다 진중한 언행과 품격으로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줄 것을 당부했다.

11월3일 대선은 이런 기대에 트럼프가 얼마나 부응했는지, 유권자들이 평가하고 심판을 내리는 절차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대의에 걸 맞는 심판이 이뤄지려면 권리를 가진 모든 국민들이 빠짐없이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투표율 추세를 보면 민주주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낮은 게 사실이다. 지난 2016년 대선 투표율은 55%에 불과했다. 특히 18~29세 사이 젊은 층의 투표율은 40%의 참담한 수준이었다.

이렇듯 투표는 하지 않으면서 선출된 대통령을 비난하고 욕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투표를 포기했던 자신의 선택을 잊은 무책임한 태도라 할 수 있다. 투표를 포기한 순간 자신보다 못한 인간의 지배를 받을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지 않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정치적 무관심 때문일 수도 있고 투표를 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이 번거로워 투표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겉으로 드러내는 이유들이 무엇이든 간에 속마음에는 “그깟 한 표가 뭔 대수”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만약 투표를 포기하고픈 유혹이 고개를 든다면 지난 2000년 미국대선을 떠올리기 바란다. 당시 대권의 향방을 가른 것은 플로리다의 537 표였다. 재검표와 이어진 법원판결들, 그리고 앨 고어의 승복 등 긴 혼란의 시간을 거친 후 조지 W. 부시는 플로리다에서 앞섰던 단 500여 표를 바탕으로 백악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플로리다를 떠올릴 때마다 “만약 플로리다 한인들이 좀 더 많이 투표장에 나갔더라면 미국 역사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그러니 한 표의 무게는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다.

법정스님의 책을 보면 고요한 겨울 밤 들려오는, 눈이 수북이 내려앉은 나뭇가지들이 꺾이는 소리에 대한 언급이 많다, 눈 한 송이의 무게는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한없이 가볍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 나뭇가지 위에 쌓일 때 어느 순간 굵은 가지는 꺾어지고 만다. 당신의 한 표가 바로 그 마지막 눈송이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이처럼 당신의 한 표가 지닌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니 그저 한 표일 뿐이라고 여기는 생각은 버려주길 바란다. 지금 미국은 역사의 교차로에 서 있다. 어느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미국의 미래와 운명이 좌우될 것이다. 그 행로를 결정해줄 소중한 한 표가 바로 당신 손에 쥐어져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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