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복지행정 vs 경제력

2020-10-20 (화) 김효선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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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영토가 있는 터키가 궁금해 늘 가고 싶었다. 나는 외국이라도 그냥 이웃집 말 가듯이 늘 편안한 맘으로 나서곤 하는 터라 별 생각 없이 터키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은 생각보다 작았고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적어도 국제공항에는 기본적인 장애인 서비스는 있으리라 생가하고 박력 있게 휠체어를 밀고 공항보안대를 지나 겨우 문 하나를 통과하자 터키가 바로 턱밑으로 훅하고 다가왔다. 선교사님과 만나기로 한 맥도날드가 보이지 않아 안내데스크에 가서 물었더니 퉁명스럽게 “없어”라고 말하곤 빨리 비키라고 했다. 세관을 통과해 나오면 바로 있다던 맥도날드는 어디 있는 것일까? 그냥 마중이 늦어지는 거겠지 하고 넉넉한 맘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터키를 즐기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선교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옛 국제공항으로 내렸고 선교사님은 새로 생긴 사비아 괵첸 공항에서 기다셨단다. 날이 어두워져서야 겨우 만나서 블루모스크 옆에 있는 호텔로 이동했다. 오래된 호텔은 복도나 방이 좁지만 휠체어로 다닐 만했고 자상한 매니저가 잘 도와주었다.


다음날부터의 터키 관광은 도전정신을 필요로 했다. 술탄 아흐메트 광장은 울퉁불퉁해도 강도 높은 팔운동을 하는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베이레르베이 궁전에 도착했을 때는 반갑게도 계단 옆에 장애인용 작은 승강기가 있었다. 반가워하며 계단위에서 안내하고 있는 안내원에게 승강기를 내려달라고 하자 그 사람은 이리 올라오던지 아님 돌아가란다.

관람을 할 수 없기에 말로만 듣던 유명한 성소피아 성당을 찾았다. 안내인에게 나는 불편해서 위층 관광은 포기하고 아래층 성전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안내인은 대꾸도 없이 손짓으로 모든 사람을 정한 코스로만 보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성당의 위층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지만 경사로였다. 힘들었어도 위로 올라가 내부를 내려다 본 광경이 너무 장관이어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 접근권을 위한 설치물은 국제관행에 따라 보이기 위해서라도 국가가 주도하는 정책이 중요한 것이다.

고적지에서의 푸대접을 뒤로 하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라는 그랜드 바자르에 갔다. 같은 나라였지만 그곳은 다른 여행지와는 사뭇 달랐다. 휠체어로 다니는 것도 수월했고 시장 사람들도 내 말에 귀를 기울여 물건을 찾아주고 이런저런 것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글쎄 차이라면 공공의 관광시설과 자유경제에 따른 시장이라는 점이었을까? 그리고 생각해보니 1988년 서울 장애인 올림픽이 생각났다. 그 당시 한국에는 장애인의 접근권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때라 미국 휠체어 농구팀과 찾았던 서울에서 혼자 걱정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 가장 놀랍게도 이태원 쇼핑가는 이미 장애인 소비자를 맞이할 수 있게 장애인의 접근권이 잘 마련되어 있었다.

장애인의 접근권이 램프와 건축물의 변경과 같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가게로 들어가는 턱에 나무를 대어 넘어가게 만들었고 건물 내에서는 장애인 고객에게 물건을 가져다 보여주는 정도의 배려였지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는지 모른다. 장애인이 돈을 쓰는 소비자일 때 비장애인 쪽에서 적극적으로 입장 차이를 줄여준다는 점에서 장애인에게 경제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했다.

하지만 유적지라던가 오래된 건물과 도시는 바뀔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깨진 것도 또한 서울 장애인 올림픽이었다. 터키가 1300-1400년의 오스만 제국의 유적지인 만큼 우리나라의 고궁들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건조되었다. 집을 바닥에서 올려 짓고 툇마루가 있는 한국 전통방식의 경복궁도 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나무로 조금씩 임시램프를 만들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모두가 함께 사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경제나 복지행정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들의 의지가 소중하다는 사실이었다.

<김효선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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