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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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상향

2020-10-13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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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기가 꿈꾸는 이상적인 마을 혹은 사회가 있다. “나는 이런 데서 살고 싶다”는 꿈에 그리는 사회이다. 흔히 유토피아라고 말한다. 필자는 공상을 많이 하는 편으로서 이런 이상향을 그려 보았다.

그곳은 언제나 청명한 날씨이다. 허리케인도 없고 홍수도 안 나고 무엇보다 싸움이 없다.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고 모두가 도와주려는 사람들 뿐이다. 정부의 중대발표 긴급발표 같은 것은 없다.

혁명이라는 말은 사전에도 없고 내 편 네 편 편가르기도 없는 나라이다.


그 곳에도 올림픽 경기가 있는데 메달은 모두 아이들이 차지한다. 금메달은 순진한 사람에게, 은메달은 정직한 사람에게, 동메달은 소박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그곳에는 조미료가 필요없다. 각자가 소금이기 때문이다. 그 곳에는 전기가 필요 없다. 각자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에는 슬픔의 눈물은 없고 기쁨의 눈물만이 있다.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 소리는 들리지 않고 즐거운 웃음 소리만이 들리는 곳이다. 욕심장이들의 아귀 다툼은 없고 친절한 사람들의 미소만이 보이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늙는 것을 모르는 곳, 전쟁이란 사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나의 이상향이다.

여러 나라가 고층건물 경쟁을 한다. 어느 나라가 몇층 짜리 하이라이트(고층건물)를 올렸다는 것이 나라의 자랑거리이다. 한 때 뉴욕이 1,454피드의 고층건물을 계획하였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취소되었다.

뉴욕타임스의 마틴 고트리브 기자에 의하면 고층건물을 올리려는 인간의 욕심은 자기과시, 경제과시, 지방과시(Local Pride) 때문이라고 한다. 높이 올려야 자기가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에게도 돈 과시, 집안 과시, 학벌 과시 등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 과시가 경쟁을 부르고 정복욕을 부르고 싸움을 일으킨다. 벌레의 인생관에서 나비의 인생관으로 탈바꿈 하는 것을 기독교 인생관에서는 부활의 신앙이라고 부른다.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복음 12:24)고 성경은 말한다.

나의 이상향에는 무기를 가진 자들의 정권 강탈도 없고, 깜짝 쇼도 없고,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곳 숟가락은 매우 길다. 제 숟가락으로 저만 먹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을 먹여주기 위하여 아주 긴 숟가락만을 쓴다. 코로나 바이러스 병균도 없고 의사도 없다. 욕심이 없으니 탈도 없다. 무엇보다 죽는 일이 없으니 그 많은 건강 보약들이 필요 없다.

나의 이상향과 같은 곳을 기독교에서는 천국이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극락이라고 하는데 의인(義人)이 가는 곳이 아니라 회개한 죄인들이 가는 곳이다. 착한 행실을 쌓은 사람들이 보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죄를 많이 지었더라도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뉴욕주 매호팩폴즈에 사는 프랜크 맥크로스키 씨가 뉴욕주가 선정하는 ‘훌륭한 이웃상’을 받았다. 그는 지난 4년간 해마다 500시간의 자원봉사를 하였다.

그는 멀시 대학의 교수이면서도 자원 소방수, 자원 수급차 운전, 초등학교의 풋볼 코치 등을 보수 없이 해 왔다는 것이다. 미국이 잘 돌아가는 것은 이런 자원봉사자들 때문이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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