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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원의 칼’ 빼들기 전에

2020-10-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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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로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생존을 위한 자구책들을 강구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흔하고 쉽게 이뤄지는 게 감원이다. 최근 디즈니가 2만8,000명 감원 계획을 발표하는 등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경영난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의 대규모 감원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즉각적으로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직원을 줄이는 것이라는 경영진의 판단이 자리 잡고 있다.

직원들을 떠나게 함으로써 봉급과 고용에 뒤따르는 부대비용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감원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회복하기 힘든 심리적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살아남은 직원들 역시 죄의식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같은 정서적 불안을 느끼게 된다. 또 고용관련 소송의 대다수는 감원과 관련돼 있다.

그만큼 감원을 할 때는 신중함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감원을 하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을 내보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고 불편한 결정일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 감정이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직원을 줄이고 내보내야 할 상황이라면 상처를 최소화하면서 감원을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 핵심은 ‘공정성’이다. ‘공정성’은 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를 밝혀주는 ‘투명성’과 떠나는 이들을 정중하게 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공정성’이 보이지 않을 경우 남은 직원들은 자신들 역시 언제든 소모품이 될 수 있다는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다.

경영자가 잊어서는 안 될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감원이 어떤 다른 방법도 없는 경우에 선택하는,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어려워졌다고 사람들부터 잘라내는 것은 현명한 경영이 아니다. 캔자스 대학의 저명한 경영학자인 제임스 거스리는 이런 주장의 대표적 신봉자이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정 상황이 나빠지자 자신의 대학도 감원을 실시했다며 대상은 대부분 청소부와 경비원 등 저임금 육체근로자들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곧바로 감원에 들어가는 이런 방식에 거부감을 나타낸다. 감원 당한 근로자들보다 훨씬 나은 처우를 받는 교수들과 교직원들의 봉급을 삭감하고 무급휴직을 갖도록 하는 조치를 먼저 시행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정의로울 뿐 아니라 대학 운영에도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거스리 교수의 주장은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다. 구체적인 사례들로 타당성이 뒷받침된다. 콜로라도 대학 웨인 캐스시오 교수는 2명의 동료들과 함께 1980년부터 2016년까지 뉴욕 증권시장에서 거래된 기업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했다. 주제는 감원과 기업실적 간의 연관성이었다.

이들의 연구 결과 봉급삭감과 무급휴직 실시, 그리고 적자감수 등을 통해 감원을 최대한 미룬 기업들의 경우 경제적 위기가 지나가고 난 2년 후 주가 상승폭이 가장 높았다. 반면 기업이 어려워지자 곧바로 직원 자르기부터 시작한 기업들의 주가와 실적은 이에 훨씬 못 미쳤다.

덧셈과 뺄셈으로 수치를 계산하는 산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니 산수에 의존한 경영은 고차원이라 볼 수 없다. 고차원의 경영이 되려면 철학이 뒷받침돼야 한다. 건조한 수치에만 매몰된 산수와 달리 철학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깔려있다.

직원들은 소중한 자산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로 경영이 어려워졌지만 가능한 한 함께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면 직원들은 성과로 보답해 준다. 어려울 때일수록 인사정책은 직원들의 사기와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지금 감원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기업이라면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 캐스시오 교수팀의 연구결과를 한 번 떠올려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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