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서울 용산 집 정원에서 아버님, 나 그리고 스피츠. 일본식 집 정원에는 큰 은행나무들과 향나무 그리고 잉어들이 노니는 연못이 있었다. 10여 년 전 방문한 집에는 나무들과 연못은 없어지고, 주차장으로 변해있었다.
앞으로 할 이야기들은 실화이며, 또한 사랑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남녀 간의 그런 달캉달캉한 이야기는 기대 안하시기 바란다. 이 이야기들은 남자이기에 언제, 어디선가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그래서 이제야 남자라고 혼자서 묵묵히 걸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다다른 남자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오마주(Homag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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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부장적이시던 아버지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제물이다. 그러나 비축, 저장 불가능한 보물. 한번 지나치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쉬운, 그런 것이 시간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심장과 붉은 동맥에서 뛰는 맥박과도 같이 규칙적이다. 그러나 또한 시간이란 우리들의 온몸을 휘감고 있는, 시퍼렇게 멍든 정맥과도 같이 온갖 상처들을 남긴다.
아버지는 과묵하셨고, 가족들에게 엄격하셨다. 겉으로 보이는 아버지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배우자이며 최상 남자의 표본이었다. 아버님은 평생을 금주, 금연, 그리고 자녀를 둔 이후 금욕으로 사셨다. 그리고 내 평생 그분이 거짓말이나 부적절한 일을 하시는 모습을 본 일도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 비추어진 아버지는 최악이었다.
# 바퀴벌레 득실거리던 아파트
한국에서의 아버님은 미제 자가용에 기사님까지 딸린 어엿한 국가 기업 사장님이었으며, 무서운 회초리 휘두르는 가장이셨다. 미국으로 먼저 건너 오셨던 그분과의 재회는 그때 막 사춘기에 접어든 나 그리고, 우리 삼형제에게는 크나큰 충격이었다. 수트랜드(Suitland), 우범지대에서 시작한 미국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아버님은 방 하나 없는 ‘efficiency apartment’에 아무런 가구나 가재도구도 없이 사시고 계셨다. 그리고 죽이고 또 죽여도 또 나오는 바퀴벌레들….
#굶주린 배를 채워주던 7-11
미국에서 큰 사업을 하시리라 믿었던 아버지는 7-11 종업원으로 전락하셨고, 그 덕에 나와 형은 서투른 영어를 7-11에서 배우고, 굶주린 배를 그곳에서 채우고, 고단한 잠을 가게 뒤 창고 박스 위에서 잤다.
고등학교에는 우리 형제 외에도 몇몇 안 되는 한국 학생들이 있었으나 그 누구와도 친구로 지낼 수도 없었다. 하교 하는 대로 난 곧바로 4-5마일 걸어서 7-11에 출근해야 했었다. 그래도, 한국의 탄탄한 교육 덕분에 나는 항상 모범적인(honor roll) 학생이었다. 아침밥을 거르며 학교에 등교 할 때마다, 저녁 11시가 넘어서 7-11에서 퇴근하고 어두운 밤길을 걸으며 그 지겨운 아파트로 걸어갈 때마다, 한국에 홀로 남아 계시던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 뒤쳐진 아버지
그해는 미국 건국 200주년이었기에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어느 무더운 여름 주말 아버지는 단벌 양복을 차려 입으시고 우리 셋을 Chevy Nova에 실어 DC 박물관 관람에 나섰다. 그날은, 한국 문화예술품들이 전시 되는 특별행사였는데, 우리 모두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전시품 옆에 서서 사진도 몇 장 찍었다.
그런데 옆에 전시된 중국이나 일본 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 전시품들은 취약해 보였고, 스케일 역시 작아 보였다. 그때 어느 미국인이 아버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는데, 아버님의 서투른 답변이 내 마음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다.
박물관을 나와 차로 돌아가는 보도에서 아버지 혼자만이 자식들과 떨어져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뒤로 뒤쳐져 혼자 걷고 계셨다. 뒤로 돌아서 바라본 아버지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 안타까운 마음도 잠시, “아, 빨리 오세요!” 하며 분노 섞인 말이 입에서 튀어 나왔다. 중년의 아버지가 힘을 내서 우리 셋을 거의 따라붙을 쯤, 자식들은 무엇이 창피했는지, 다시 속도를 내어 앞으로 멀어져 갔다.
서투른 영어의 아버지, 능력 없는 아버지, 미국 아버지들처럼 세련되지 못한 아버지, 그러나 고집 세고 가부장적이시던 아버지가 싫었다. 내가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면 절대로 아버지 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가슴을 짓눌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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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