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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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쟁이

2020-10-03 (토) 김은영/기후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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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쟁이는 땅에 큰 동그라미를 치고 사람들을 그 동그라미 밖으로 앉게 했다. 그리고 시퍼렇게 간 칼을 꺼내어 좌우로 흔들다가 하늘로 던졌다가 손바닥으로 받았다. 이번엔 칼을 하늘 높이 올려놓고 입을 하늘을 향해 벌리니 그 칼이 바로 입속으로 꽂혔다. 고개를 젖히고 뻣뻣이 선 채, 하늘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칼을 삼키기 시작한다. 칼고리가 이에 걸려 칼자루만 넘어가지 않고 남아있는데 요술쟁이는 양 손을 땅에 짚고 엎드려 칼자루를 땅에 큭큭 다진다. 늠름하게 똑바로 서서 뽑아든 칼을 천천히 두 손으로 받들어 보인다. 뽑아낸 칼끝에 묻은 핏방울엔 아직도 더운 기운이 제법 많이 남아있다.”

1780년 8월 초순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로부터 220년 후 1999년 뉴욕의 세계은행 강당에서도 연암이 본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그날의 강연자가 강연을 마치고 갑자기 입고 있던 와이셔츠를 찢는다. 그 안에서 반짝이로 번개모양을 수놓은 검은 티셔츠가 나왔다. 청중에게 조용히 하라고 한 뒤 긴 군용 검을 꺼냈다. 그 검을 갑자기 삼키기 시작했다. 세계은행의 직원들도 열하 저자거리의 구경꾼들처럼 열광했다.

연사는 요술쟁이가 아니다. 세계적인 대중 강연자이고 의사이고 통계학자인 한스 로스링 박사이다. 그는 검을 삼키는 이유는 ‘우리가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고 그리고 상식을 넘어 생각해보기도 해야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라고 그의 유작 ‘팩트풀네스(Factfulness)’에서 서술한다.


그날 그의 열정적인 강연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이라는 용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1951년의 세상에서는 그 개념이 어느 정도 맞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동안 세계는 계속 발전하여 2019년에 와서 인구의 91%가 중간 소득층에 살고 있다. 여전히 이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이유는 우리 속에 내재된 세상을 왜곡시켜 보게하는 ‘간극본능(Gap Insticnt)’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을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으로 갈라서 보게 하는 것, ‘흑백 논리’, ‘우리와 그들’, ‘아군과 적군’, ‘선과 악’, ‘천사와 악마’등으로 두 개의 극적개념을 가지고 세상을 두 개로 가르는 본능이다.

그의 어렸을 때 꿈은 서커스 예술가였다. 부모님이 원했기에 의대로 가서 식도 원리에 대한 강의를 듣는 중 눈이 번쩍 뜨였다. “목에 뭔가가 걸렸을 때 턱을 앞으로 빼면 식도가 똑바로 펴집니다”라고 하면서 교수님은 긴 검을 삼킨 사람의 엑스레이를 보여주었다. 집에 오자마자 낚싯대를 삼켜보았다. 3cm도 못 들어가 목에 걸렸다. 꿈을 접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그가 돌보는 환자 중에 전에 검을 삼키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 환자는 “젊은 의사 양반, 식도가 납작하다는 거 모르나? 납작한 것만 집어넣을 수 있어. 그래서 검을 집어넣는 거라고.” 말했다.

호기심의 완판 연암 박지원이 세계은행 강당에서 그의 강연을 들었다면 그의 일기에 무어라고 적었을까? 로슬링 박사가 유업으로 세상에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 “우리에게는 세상을 비뚤게 보게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세상을 이분화하고, 부정적으로 보고, 남을 비난하고, 다급해지면 잘못된 결정을 하게 하는 본능 말입니다. 본능을 믿지 말고 데이터를 가지고 비판적 사고를 하십시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세계은행은 그날의 강연이후 17년동안 14번이나 더 한 후에야 공식적으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용어를 폐지하고 그가 제안한 4단계 방법을 채택한다고 발표하였다.

2016년 대선에서 흑색선전과 가짜 뉴스에 속아서 우리는 왕이 되고 싶은 지도자를 뽑았다. 그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으려고 2020선거에도 러시아와 트럼프가 눈에 불을 켜고 내놓는 전략도 바로 이러한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다. 가짜뉴스를 양산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우리안에 내재된 극단화, 부정적 본능, 비난본능 등을 자극하여 세상을 비뚤게 보게 하려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모든 투표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로스링 박사의 메시지를 단단히 마음에 새겨들어야할 것이다.

<김은영/기후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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