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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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게임의 단상

2020-09-09 (수) 방인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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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골프를 안친다. 아니 못 친다. 손자가 네다섯 살 때, 집안에서 장난감골프채로 손자랑 놀았던 홀인원(?)내기가 유일한 게임이었다. 이렇게 골프실전엔 전무하지만, 원래는 운동을 무척 좋아했다.

중, 고교 때 반 대항 배구와 농구시합이 열리면 반 선수로 차출돼 뛰곤 했다. 아버지가 마당에 탁구대를 놓아주셔서 동생들과 탁구를 쳤고, 배드민턴도 꽤 놀았다. 자전거나 스케이트도 물론 즐겼다.

물놀이에 자주 데려가신 아버지 덕에 헤엄도 일찌감치 익혔고. 심지어 숙제도 라디오로 음악대신 야구나 농구중계를 들으면서 했다. 이렇게 자라면서 섭렵하듯 여러 운동을 해보게 된 8할은, 아버지의 영향이다.


아버지세대는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와 여건상, 건강과 여가선용을 위한 취미운동이 활성화될 수 없었다. 아버지도 등산 외에 다른 운동은 안하셨지만, 스포츠관전 애호가셨다.

우린 6남맨데 위로 셋째까지 딸이다. 아들들이 어려서 아버지는 둘째딸인 나를 데리고 서울운동장 야구장에 가시곤 했다. 전광판에 나오는 기록의 해석과 경기의 룰도 하나하나 일러주셨다. 그런 식으로 농구와 축구 보는 법도 깨닫게 해주셨다.

늘 아득하게 먼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진 운동종목이 테니스와 골프였다. 다행인지 골프의 나라 미국에서 살게 됐다. 허나 남편이 골프가 적성에 안 맞는다며 외면하니 나로선 속수무책이었다. 속으로 나중을 기약, 대신 골프중계를 보며 아버지처럼 등산만 했다.

골프의 룰도 모르는 문외한이지만, 자연과 초록잔디의 싱그러운 화면이 마음과 눈에 안정감을 주어 좋았다. 경기해석을 일러주실 아버지도 영영 떠나신 후라, 순전히 독학(?)으로 터득해가면서. 흠이라면 경기시간이 길어 시간을 많이 뺏기는 거다.

허나 빠르게 뛰거나 숨찬 경기들과 달리, 딴 일을 하면서도 여유 있게 게임의 흐름을 따라가니 문제가 안됐다.

점차로 PGA와 LPGA에 연이은 한국선수들의 등장과 선전(善戰)에 한껏 고무돼, 골프시청은 낙이 됐다. 자연스레 한국선수들은 물론 웬만한 상위권선수들의 얼굴과 이름도 훤하다. 걸음걸이, 뒤태, 스윙 폼만 보고도 누군지 척 감이 올만큼. 시험 삼아 대조해보면 거의 다 정답이라 혼자 피식 웃곤 한다.

그런데 골프도 COVID19로 딱 중단됐다. 일상의 큰 즐거움이 사라지니 금단증상인양 가슴에 터널이 생겼다. 몇 달 후 갤러리들 없이 경기는 재개됐지만, 보는 맛이 반 토막이다. 선수들과 갤러리들 간에 호흡과 조화가 이뤄져야 재미가 배가(倍加)되는 스포츠니까.


모든 조화는 미(美)니까. 공이 홀 앞에서 아슬아슬 멈추거나 교묘하게 비껴가면 “오!”하는 탄식들과 한숨소리. 공이 절묘하게 굴러 마술처럼 기적을 연출하면, 큰 물결이 일듯 “와아!”경외에 찬 탄성들. 그런 열광과 호응이 선수들의 사기진작(士氣振作)에도 반영될 터!

불청객인 코로나가 범세계적이라 참으로 심각한 난제다. 이 세기적인 지구촌의 재난이 예상외로 장기전이 됐지만, 언젠가는 끝나고 지나갈 것이다. 전염성으로 인해 인간들 사이에 조성된 긴장과 경계와 불신이 사라지고, 상실했던 신뢰감도 회복될 것이다. 제발, 하루 빨리, 골프경기를 위시해 모든 일과 사업, 행사가 제자리로, 정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오늘도 무사히’ 하고 기도하는 나날이 아니라, 예전처럼 좋은 일이 생기기를 소망하는, 밝은 하루하루로 살았으면 좋겠다. 온 인류가 ‘세계는 하나로’ 협심, 고행 길을 감내하며 타파해가는 중이다.

<방인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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