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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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할 수 있는 ‘이심전심’

2020-09-02 (수) 모니카 이 부부가족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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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옛날 어른들이 하던 말이나 한자성어가 ‘진짜 맞는구나’라고 고개가 끄덕여질 때가 많아진다. 전에는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섭섭하고 마음 상하던 부분도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기는 건 먼저 삶을 살아내신 어르신들의 지혜와 옛 성현들의 교훈을 통해 사람과 상황을 받아들이는 이해의 폭이 넓어진 덕일 것이다.

그런데 상담을 하면서 ‘이건 아닌데’라고 자주 생각하며 떠올리게 되는 한자 성어가 있는데 바로 ‘이심전심’이다. 송나라의 중 도언이 기록한 ‘전등록’에 기록된 이야기다. 석가가 어느 날 제자들을 불러 모은 뒤 그들 앞에서 손가락으로 연꽃 한 송이를 집어 들고 말없이 약간 비틀어 보였다. 제자들은 석가가 왜 그러는지 그 뜻을 알 수 없었으나 가섭만은 그 뜻을 깨닫고 빙긋이 웃었다. 그제야 석가도 빙그레 웃으며 가섭에게 불교의 진리를 전수했다고 한다. 이처럼 ‘말이나 글이 아닌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였다’고 한 데서 ‘이심전심’이 유래되었다.

우리도 석가와 가섭처럼 빙그레 웃는 미소나 슬픈 표정만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상대의 표정을 읽고 어림짐작으로 추측하다가 오히려 오해가 생기고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를 경험한다. 그래서 섣부른 ‘이심전심’의 기대와 추측은 위험할 수 있음을 상담을 할수록 더 깨닫는다. 마음에 품고 있던 감정과 생각을 언어를 통해 상대에게 전달할 때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관계가 회복되는 경우들을 종종 경험한다.


불안이나 우울증으로 상담을 시작한 여성들의 상당수는 상대의 표정이나 행동을 스스로 확대 해석하여 장편소설을 쓰며 괴로워한다. 아내들은 종종 “남편 표정만 봐도 알아요. 집에 오는 걸 싫어하는게 얼굴에 역력해요.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얼굴에 써있어요”라고 말하며 우울해한다. 그러나 부부상담 중에 남편은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다가 집에 오면 그냥 넋 놓고 표정 없이 혼자 쉬고 있는 것뿐인데 오해를 했었네’라고 말하는 경우를 본다. 그렇다면 남편이 혼자 쉴 때 “내가 오늘 직장에서 많이 피곤해서 혼자 있는 시간을 한두 시간 갖고 싶어”라고 한 마디만 해주었어도 아내는 그런 상상으로 소설을 쓰며 괴로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담 중 자주 듣는 말 중의 하나는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요?”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한국 문화 속에서 성장한 우리들이 마음의 느낌과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많은 내담자들이 “표현하고 싶은데 잘 안되요”라고 말한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듯이 감정을 표현하는데도 지속적인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 행복하고, ‘당신 정말 멋지네’라는 칭찬과 격려를 받을 때 힘이 난다. ‘고마워’ 또는 ‘미안해’라는 한마디로 오랫동안 쌓여있던 감정들이 눈처럼 녹는 것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언어의 힘을 안다. ‘말을 안해도 알겠지‘란 생각은 위험한 기대를 만들고 상대는 알지 못하는 혼자 만든 기대가 좌절될 때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 수 있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혼자 쌓은 기대지, 다른 누군가가 아닌 것이다.

오늘은 가까운 이들에게 문자나 말을 통해 마음을 표현해보자.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라고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구체적인 칭찬과 격려의 표현 몇 가지를 적어보았다. 표현하는 것이 아직 어색하다면 소리 내어 읽어보고 연습을 거친 후 자녀나 배우자, 또는 부모님에게 말이나 문자를 띄워보자.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당신이 참 든든해요. 네가 내 옆에 있어 참 좋다. 너라면 할 수 있어. 네가 참 자랑스럽다. 고마워. 널 믿어. 당신이 내게 큰 힘이 됩니다. 당신은 참 소중한 존재입니다. 멋져요! 사랑해.”

<모니카 이 부부가족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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