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 어때요?”
이 한 마디 말 때문에 한국의 가수 이효리가 중국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 예능 방송 프로그램에서 예명을 글로벌하게 중국식으로 짓자며 ‘마오‘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중국 누리꾼들의 공적이 되고 만 것이다.
“마오 어때요?” 발언이 공중파를 탄 시간은 21일(한국시간)이다. 한 주가 지난 후에도 중국식 트위터인 웨이보 이효리 계정과 관련기사는 비난 댓글로 도배되는 등 후폭풍은 여전히 거세다.
그 댓글 내용들이 그렇다. “앞으로 중국에 들어올 생각마라”정도는 점잖은 편이다. “너의 제삿날을 축하한다” “예전 같았다면 너 같은 사람은 때려 죽여도 지나치지 않았다” 등등 옮기기에 힘들만큼 원색적 저주와 저질스런 비어로 가득 찼다.
왜 그 난리인가. 중국의 국부 마오쩌뚱을 모독했다는 거다. 그러면서 이런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너희 나라는 지금까지 위대한 인물이 나오지 않아서 마오의 위상을 모를 것이다…”
이효리가 그 발언을 했을 때 마오쩌뚱을 생각했을까. 그냥 산뜻한 어감을 주는 중국 이름 느낌으로 한 말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중국인들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마오 어때요’- 그 한 마디에 섬뜩할 정도로 뻘겋게 달아오른 중국의 여론. 이를 어떻게 봐야하나.
“중국은 120년 전 경자년의 의화단 멘탈리티에서 아직도 못 벗어난 것 같다.” 페더럴리스트지의 지적이다.
외국, 서방의 것이라면 무조건 배격한다. 중국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생각되면 벌떼 같이 달려들어 공격한다. ‘전랑외교’에서 보듯이. 그 베이징의 방침을 비판하면 바로 철창행이다. 동시에 끊임없는 역정보 선전선동을 통해 서방세계는 하찮은 바이러스의 내습에도 우왕좌왕하는 허약한 사회로 묘사한다.
시진핑 1인 통치의 중국,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에서의 오늘날 중국의 상황이 외세와 기독교를 악마시하면서 배척했던 의화단의 난이 일어난 청나라 말기와 흡사하다는 거다.
당시 의화단과 그들을 따르는 민중의 외세에 대한 분노는 극심해 서양인, 기독교인이라면 무조건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청 왕조는 그 의화단의 외세배척운동을 뒤에서 교묘히 조종했다. 그 결과 200여명의 서양인 선교사와 3만여 명의 중국인 기독교인들이 희생됐다.
다른 말이 아니다.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에 갇혀있는 것이 시진핑의 중국공산당 통치의 중국 사회라는 거다.
‘대중에게 피포위 의식을 주입시켜라’- 철권통치 독재 권력의 체제유지를 위한 기본통치 방식이다. 외부의 적, 그러니까 서방에 의해 위협을 받는다며 공포를 끊임없이 조장한다. 그런 식으로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낸다. 동시에 대중에게는 독재체재의 우월함을 선전선동을 통해 주지시킨다. 그렇게 세뇌된 대중은 결국 흑백 사고에 빠지면서 집단 히스테리 증세마저 보인다.
1인 독재 체제를 강화하면서 시진핑이 동원한 것이 바로 이 수법이다. 한(漢)지상주의의 중화민족주의를 한껏 조장한다. 이른바 ‘위대한 중국몽’ 제시와 함께. 동시에 중국 공산당의 비조 마오쩌뚱의 위상을 신(神)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이를 통해 시진핑은 스스로에게 마오쩌뚱과 같은 위상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냉전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전개돼왔다. 중국의 도전으로.” 후버연구소의 니얼 퍼거슨의 주장이다.
그러니까 시진핑 시대들어 중국 사회의 피포위 의식은 중증의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으로 그런 분위기에서 중국공산당은 물론 중국의 학계도 이미 수년 전부터 ‘미국과의 냉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퍼거슨이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베스트셀러가 된 3부작의 공상과학소설 ‘삼체’(The Three Body Problem)의 제 2권 ‘암흑의 숲’(The Dark Forest)이다. 중국적 사회주의 특성의 냉전사고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고 할까. 문제는 중국의 엘리트는 물론 일반 대중도 이 소설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류츠신은 제 1권에서 이렇게 진술한다. “…유럽인들은 짐이 독재와 폭정으로 사회의 창조력을 말살한다고 욕하지만 엄격한 기율로 구속된 많은 사람들이 하나로 힘을 합쳐 위대한 지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진술은 2권에서 이렇게 이어진다. “우주는 암흑의 숲이다. 모든 문명은 총을 든 사냥꾼으로 저마다 유령처럼 숲속을 누비고 있다. 숲속 곳곳에 사냥꾼들이 숨어있으니 다른 생명을 발견하면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다. 총을 쏴서 없애버리는 거다. 그게 사냥꾼이든, 천사든 악마든, 갓난아기든 노인이든, 소년이든 소녀이든 간에.”
이 류츠신을 누구보다 높이 평가하고 있는 인물은 시진핑의 책사이자 맹렬한 반미주의자로 알려진 왕후닝이다. 왜. 1인 독재의 시진핑 권력을 옹호하면서 중화민족 외에는 모두 적이라는 베이징의 사고를 대변해서일까.
중증의 피포위 의식에 갇힌 중국 사회. 아무리 보아도 위태위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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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