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우리가 성사다!

2020-08-29 (토) 조민현 신부
크게 작게
가톨릭교회 안에 성사만큼 신비한 종교적인 의식도 세상에 많지 않다. 빵과 포도주가 성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몸이 된다느니, 평생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산다느니, 병자성사를 받는다느니, 죄를 고백하고 사죄해주는 고백성사를 받는다느니 말이다.

신부들과 수도자와 수녀님들의 삶이 말 그대로 성사이다. 삶 자체가 증거이고 하느님의 신비이다. 그래서 신부들이 잘못한 것이 신문에 보도되면 너도나도 관심이 많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을 드러내는 성사가 거꾸로 정반대가 되기 때문이다. 신부들의 성에 대한 스캔들이 그러했다.

친한 신부가 한탄하며 하는 말이 친한 남자친구와 영화를 보러가면 게이라고 소문 날까 걱정이라고 한다. 사실 나도 남자친구와 극장에 가면 바로 옆에 앉지 않는다. 혹시 여신자하고 다니면 신부가 연애한다고 쫙 소문이 난다. 가끔 고등부 학생이나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영화를 보러가거나 저녁을 먹으러 다니면 어린아이와 다닌다고 페도파일(Pedophile)이라고 수군거릴까봐 걱정된다.


이런 것 저런 것 다 골치 아파서 혼자 다니기 시작하면 저 신부는 뭔가 이상하다, 혼자 다니기를 좋아한다 하며 앤타이 소셜이라고 한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우리가 누구일까? 뭐하는 이들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며 자신의 소명과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된다.

이 세상에서 신부로 수도자로 한 평생 살아가는 일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건강하고 멀쩡하게 생긴 젊은 사람들이 혼자 살아가며 하느님의 대리자로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죄를 사해주고 무슨 이야기이든 듣고서 죽을 때까지 비밀을 지켜준다는 것, 참 이 세상에서 보기 힘드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인간적인 나약함이 드러나고 죄를 짓게 되고 죄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는 것이다. 나는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이 좋다. 왜냐하면 영적인 치유자라 불리는 이들이 스스로도 자신의 상처로 아파하고 고통받기 때문이다.

오늘 같은 세상에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신의를 지키며 친구처럼 연인처럼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기적과도 같고 메마른 세상에 오아시스 같지 않은가? 그래서 바로 여러분이 성사이다. 우리가 성사이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교회가 이 21세기에 또 어떻게 될지 그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사랑, 신뢰, 대화, 혼인 신품성사 너무나 아름다운 은총의 성사들이 있는 한 우리 세상은 여전히 빛나고 은혜롭고 감사할 것이다. 자 바로 우리가 성사이다.

<조민현 신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