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진정한 보수와 진보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서양의 잣대로 답을 할 필요는 없다. 한국적 보수와 진보는 개념적으로 출발했다기보다는, 해방후, 기득권자와 그 기득권자들에게 변화를 요구하다가 좌절되거나 희생된 사람들이 유대되어 반체제 그룹으로 형성되어, 전자를 보수라 한다면 후자를 진보라는 개념을 적용시키는 것이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지독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 보자는 선성장 후복지의 정책은 민주화 보다는 산업화를 추구하였고, 이는 독재와 정보정치로 이어졌다. 분단의 특수상황은 반대 그룹에 대하여, 때로는 좌파로 용공으로 정치적으로 관제(기득권자들이 만들어내는) 되기도 했다.
진보 그룹은 크게 셋으로 나뉘었다. 독재로부터 인권과 민주화를 부르짓던 그룹, 일제청산의 문제를 제기하며 민족적인 뿌리를 찾아야 한다는 민족주의 계열의 그룹, 실제적으로 북한과 연결되어 반체제운동을 전개한 그룹이다.
이 세 그룹들은 때로는 어깨동무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연합은 변화되었다. 경제성장을 통하여 국민들의 생활과 국가의 위상이 제고되며, 제1그룹과 2그룹의 일부가 보수의 입장을 수용하자, 1,2그룹의 잔류세력과 제3그룹이 힘을 길렀는데, 유신과 제5공화국을 거치며 크게 PD(민중민주주의 혁명론)파와 NP(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파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PD는 사회의 핵심문제를 계급으로 보고 노동운동과 연결하여 자본주의를 극복할 것을 주장했고, NL은 민족문제를 중시해 북한과 힘을 합쳐 미제국주의를 축출할 것을 핵심과제로 보았다.
이들은 정치적 파워형성에 촛점을 두고, 기존체제의 약점을 들추어내고, 촛불로, 인권과 북도 내민족으로 감성을 일깨우고, 반일과 반미로 주체를 주장하며 일반인들, 특히 젊은 층들로 부터 공감대를 형성해 나아갔다.
노무현정권을 거치며, 정치세력 형성과 운영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내부적인 분열과 타협을 거치며, 나름대로의 동료의식과 전략개발에 큰 진전이 있었고, 노무현계, NL, PD가 연계하여 정국을 움켜쥐었다.
NL파 인사로는 임종석, 이인영, 최재성, 우상호, 이정희 제씨들이 두각을 나타냈고, PD파 인사로는 조국, 노영민, 박원순, 심상정, 노회찬씨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21대 총선으로 입지를 굳힌 집권당은 친문세력으로 확대되고 있다.
현정권은 행정, 입법, 사법, 언론등 모든 요직에 그들의 핵심 그룹 멤버를 집어넣어 명실공이 전체주의 (팟쇼정권)정권을 만들었고, 그들이 계속 주장해온, 친북, 친중, 반일, 반미의 외교행각을 벌여왔다.
그러나 새롭게 만든다는 나라의 청사진은 아직도 없다. 아직도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고 있고, 적폐청산의 기준도 정치적인 판단으로 반일을 사용하며 보복정치의 성격을 띄고 있다.
차기 대선을 맞아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나라의 청사진을 제대로 그려서 국민들에게 제출해야 할 것이다. 그 제출된 그림을 보며, 국민들은 현명해 져야 할 것이다.
이제 내 한표가 내민족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기에, 나라와 민족에게 득이 되고 덕이 되는 그림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요즘에 들어 미국 양당의 정강이 분명치 못한 경우도 있지만, 대선때가 되면, 양당은 그래도 분명한 그림들을 내 놓는다.
미 독립혁명 시기, 에드먼드 버크의 개혁하는 보수주의, 토머스 페인의 복원하는 진보주의의 영향으로 보수와 진보의 철학적 토대가 형성되고, 독립후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확립되던 시기에 페인의 관점이 헨리 데이빗 소로의 시민불복종에서 자연인의 개념으로 다시 살아나고, 상황에 따라 궤도 수정은 했지만, 진보와 보수는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역사를 이어왔다.
양당이 제시하는 그림을 바탕으로 국민들은 비교적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고, 이것이 미국을 강하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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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KCS 전 회장 한미헤리티지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