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 단풍 들것네….
허리케인 ‘아이사이아스( Isaias)’가 잠깐 스치고 지나갔는데도 뽑히고 꺽어진 나뭇가지의 잎사귀들이 군데군데 까맣게 말라있는 타코닉 파크웨이 양쪽 숲에서 영낙없는 자연의 섭리를 보았다. 눈에 띌듯 말듯, 짙푸른 초록 잎에 붉은 끼가 스며들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단풍이 불붙듯 하겠구나. 캐츠킬과 뉴잉글랜드까지 이어지는 삼림지대의 끝자락인 웨체스터의 가을을 올해도 분명히 맞이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뛴다.
어딜 가나 병풍처럼 펼쳐지는 숲과 호수를 감상하고, 돌멩이나 나무 잎사귀를 주워 오는데야 소셜 디스턴스도, 마스크 쓰기도 필요 없다. 이것이 웨체스터에 사는 맛이다.
’따로 그리고 다 함께’라는 원칙을 따르듯이, 각각 자유롭게 그러나 모두 화목하게 살고 있는 이곳의 한인들이, 코로나 이전의 10여년 세월을 본지 지면을 통해 서로 더 가까워 졌던 것은, 그 동안 웨체스터 한인들이 덤으로 누렸던 커다란 복이 아닐 수 없다.
매주 모여 노래 연습을 하던 웨체스터 한인 합창단이며,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항상 감사의 뜻을 전하던 웨체스터 한인회가 마비된 채, 반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 뉴욕시내 확진자율이 0.025라는 뉴스를 들어도 안심이 되질 않았었다.
그런데, 뜨거운 볕에 색이 살짝 변한 나무를 보며 오색 단풍의 장관이 연상되듯, 지금 정치 경제 사회적 어려움을 겪어내는 상황 속에서, 삶의 고통에 꿋꿋이 성실히 임해왔던 조 바이든에게서 한가닥 빛이 비춰지는 것을 느꼈다.
민주당 컨벤션 연설 첫 마디로 조 바이든은 여성 인권 운동가 엘라 베이커의 말을 인용했다. ‘ Give people light and they will find a way. (사람들에게 빛을 줘라. 그러면 그들은 길을 찾을 것이다) ’에 눈이 번쩍 띄었다. 오랜 세월 자신이 겪어낸 갖가지 고통을 바탕으로 한 그의 말, “ The best way through pain and loss and grief is to find purpose. (고통을 가장 잘 이겨내려면 목적을 가져야 한다) ”라는 말에서, 자연스럽게 ‘희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웨체스터 부동산 마켓이 뜨고 있다는 소식이다. 팬데믹을 겪으며 빽빽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곳에 살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한동안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북적대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이곳 올드 타이머들이 살기 좋은 남쪽으로 떠날 때에도, 혹시 맨하탄 사는 아이들이 언젠가는 손자손녀 데리고 주택가로 올 지 모르니, 이 곳에 한 자리를 맡아 놓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노후대책을 미적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비록, 뜨거운 날 선풍기가 날개돋친듯 팔리는 격이라 해도, 집값이 올라간다는 웨체스터에 눌러 앉아있기를 잘했다 싶다.
며칠 전 센트럴 애비뉴를 지나오는데, 태권도복을 입은 노랑머리, 까망머리 어린이들이 마스크 쓰고 태권도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 저것이 우리의 빛이구나 했다. 빛이 있으면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다.
지난 1월 태어난 손자를 마음껏 안아주지 못하고 지낸 코로나 세상에서, 저 애들이 작은 힘을 갈고 닦아 결국은 벽돌장을 깨겠구나 하는 희망을 봤다. 제2의 내 고향 웨체스터를 더욱 사랑하며, 선뜻 다가오는 올 가을이 더욱 풍성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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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려/한국일보 웨체스터 전 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