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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의 향방

2020-08-04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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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만 해도 트럼프의 재선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의 개인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저의 실업률과 사상 최고의 주가가 정치 생명을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민주당 대권주자들은 버니 샌더스와 엘리자벳 워런 등 극렬 좌파 아니면 조 바이든 같이 식상한 인물이거나 피트 부티지지 같은 동성애자가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작년 말 중국 우한에서 터진 코로나 사태가 모든 것을 바꿔놨다. 이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급속히 번지면서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 위기를 불러왔고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3, 4월 두달 사이 2,000만 명이 넘는 실업자가 발생했고 실업률이 10%를 돌파했다. 2/4분기 미국 경제는 연율로 마이너스 32.9%라는 최악의 역성장을 기록했다.

재선의 단꿈에 젖어 있던 트럼프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현은 트럼프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은 코로나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그 책임은 트럼프에게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작년 11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처음 나왔을 때 그 심각성을 이해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올 1월 코로나가 중국은 물론 세계 각지로 퍼지자 미 정보 당국은 그 위험을 트럼프에게 보고했고 1월21일에는 워싱턴주에서 미국내 첫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이를 모두 무시했다. 1월22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포럼에서 트럼프는 “우리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 중국에서 온 사람 하나가 걸렸을 뿐이다. 모든 것은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에 대한 그의 첫 공식 언급이다. 1월24일 트럼프는 중국의 “노력과 투명성”에 찬사를 보내고 시진핑 주석의 바이러스 대응에 감사를 표시했다.

1월30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가 세계 보건에 대한 위협임을 공식 선언했음에도 트럼프는 “지금 우리는 매우 사소한 문제를 갖고 있다. 겨우 5명이 걸렸을 뿐이며 모두 회복중이다… 아주 좋은 결말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월 들어 트럼프는 펜스 부통령을 책임자로 하는 코로나 대책반을 꾸리기는 했으나 “현재 환자는 15명이며 이는 곧 제로에 가까워질 것”이라며 코로나는 “기적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낙관론을 폈다. 돌이켜보면 코로나 확산을 차단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인 2월 한 달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날려버린 것이다.

그 결과는 3월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환자의 폭증이다. 8월1일 현재 미국내 확진자는 460만, 사망자는 15만으로 세계 1위다. 코로나 사태는 미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냈으며 코로나 방역을 선도해야할 미국이 본받아서는 안 될 나라로 연구 대상이 됐다.

트럼프는 코로나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후에도 말라리아 약이 코로나 예방 효과가 있다느니 소독약을 체내에 주입하라느니 근거 없는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코로나 확산 방지 효과가 입증된 마스크 착용에는 심한 거부감을 보였다.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상시 착용할 경우 코로나 확산을 80%까지 차단할 수 있다는 연구 보고서도 있다.

코로나 확산과 경기 침체로 낙선 위기에 몰린 트럼프가 요즘 하는 것은 어떻게 든 꼼수로 이를 빠져 나가려는 생각뿐인 것 같다. 최근에는 11월3일로 예정된 대선을 연기하자는 주장을 폈다가 웬만한 일에는 맹목적으로 그를 따르던 공화당 중진들마저 반대하자 뜻을 접었다. 대선 일자는 연방법으로 정해져있기 때문에 이를 미루려면 연방법을 바꿔야하는데 연방하원을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지금 이는 불가능하다.

얼마 전에는 또 부재자 투표가 부정 선거의 온상이라며 대선에서 지더라도 불복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마치 시험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학생이 시험 일자를 늦춰주지 않으면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억지투정을 부리는 것 같다.

지금은 트럼프가 열세지만 대선까지 아직 석달이 남았다. 이 기간 극적인 사태가 발생해 재선에 성공할 수도 있다. 트럼프 희망대로 코로나가 “기적처럼” 사라져 경제가 다시 살아나거나 바이든이 치명적인 말 실수나 스캔들로 추락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기적이란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게 특징이다. 트럼프 시대도 이렇게 끝나가는 모양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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