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dystopia-암흑향)의 세계. 그 그림에 한 획, 한 획을 그어가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에 짓눌린 2020년의 현실이 그렇게 느껴진다는 한 국제 인권운동가의 탄식이다.
한 마디로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고 할까. 그게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과 함께 지구촌이 맞은 상황이라는 거다.
중국공산당의 행보부터 그렇다. 동중국해, 대만해협, 남중국해, 홍콩도 모자라 인도와의 국경지역까지 전선을 확대, 좌충우돌 도발에 나섰다. ‘전랑(戰狼) 외교’라고 했나. 미국에만 공격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사방을 향해 물어뜯을 것처럼 이빨을 내보인다. 이 듣도 보도 못했던 신 중국식 외교 역시 팬데믹의 산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생명만 아니라 민주주의도 위협한다’. 곳곳에서 나오는 경고다.
민주주의체제는 사실 팬데믹 이전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프리덤 하우스에 따르면 지난 14년 동안 정치적 권리와 자유가 침해된 국가는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민주주의의 침체가 특히 가파른 하강곡선을 보인 시기는 지난 5년(2015~19년)의 기간으로 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로 퇴화한 국가는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이된 경우보다 두 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난 것.
민주적 선거로 선출됐다. 그 지도자가 민주제도를 안에서부터 허문다. 같은 색깔의 사람들로 채워 사법부를 장악한다. 언론에는 재갈을 물린다. 그 다음은 야당과 시민단체 탄압이다.
멀쩡한 민주주의 체제였다. 그런 나라들이 이런 수순을 거쳐 권위주의로 탈바꿈한 경우가 하나둘이 아니다. 그 전형적인 케이스가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빅토르 오르반의 헝가리다.
그 결과 2020년 1월 현재 민주주의체제로 인정되는 국가(인구 100만 이상 기준)는 냉전종식 후 처음으로 50%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이 프리덤 하우스의 보고다.
‘민주주의 체제는 심한 결손을 보이고 있다. 권위주의는 기승을 떨고 있고. 이러다가는…’. 바로 이 타이밍에 엄습한 것이 코로나바이러스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은 민주체제를 더 어렵게 하고 있다. 반면 권위주의 체제로서는 천군만마 원군을 얻은 격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빌미로 자유는 더 옥죄어진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핑계로 집회의 자유가 박탈된다.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것은 예사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공포를 몰고 왔다. 안정을 희구하는 대중은 거의 본능적으로 권력에 매달린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 언론의 자유와 법치 등 민주주의 가치마저 양보하면서.
이후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광풍이 지구촌을 몰아치고 있다. 공포 속에 새로운 권력들이 여기저기서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권력은 무소불위의 위력과시와 함께 말 그대로 광폭의 질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조국이란 사람만 그런지 알았다. 그 뒤를 이어 황운하, 최강욱 등의 이름이 등장하더니 윤미향, 추미애, 박지원 등도 명함을 내밀고 있다. 결이 조금은 다르지만 오거돈, 박원순 등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내로남불, 파렴치, 불법혐의, 위선, 오만, 뻔뻔함, 또 뭐가 있나…. 이런 단어들의 대명사 같다. 그런 인물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언론에 등장한다. 그것도 국회를 상대로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식의 아주 당당한 자세를 보이면서.
그렇지 않아도 위선과 역설의 연속이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에서는 아예 위선의 가면조차 벗었다고 할까. 대놓고 상식과 순리를 거스르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침묵만 지키고 있는 가운데.
난세라는 표현도 모자란다. 광풍만 몰아치는 혼세(昏世)라고 할까. 거짓과 부정의, 오만. 거기에다가 코로나 착시 탓인지 혼란까지 겹쳐진 매트릭스 속에 갇혀버린 꼴이다.
그 가운데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민주주의가 없는 민주당’이 되어버렸다. 이른바 ‘문빠’의 등장은 당내 비판세력의 존재를 말살해 버린 것이다. 그 더불어민주당이 180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면서 국회는 거수기에 불과한 존재가 됐다.
사법부는 아예 난장판이다. 진영으로 쪼개지면서 판사마다 판결이 다르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엇나가더니 검사가 검사를 폭행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검찰의 정치 예속도 모자라 법이 정치의 하청업자 같이 되고만 것이다.
그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감사원장 겁박에서 보듯이 겁박정치에, 거대한 여당의 입법폭주다. 일찍이 군사독재 정권도 감히 엄두조차 못낸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법치가 끝나는 곳에 필연적으로 폭정이 시작된다’- 대중으로부터 자유를 양도받은 권력이 전체주의를 향해 달려간다고 할까.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에서의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러면 소망은 없는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나라가 니꺼냐’- 이 문구가 인터넷 공간에 나타나자마자 실시간 검색어 상위를 차지했다. 뭔가의 예후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바이러스 공포에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 공포에서 벗어나면서 대중은 상황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정상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여당압승의 4.15 총선 결과와 정반대의 흐름, 최근의 여론조사결과가 그 증거다. 대반전의 실마리가 엿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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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