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휠체어 사랑

2020-07-29 (수) 김효선 칼스테이트LA 특수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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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일을 하거나 사람을 대할 때 늘 명랑한 얼굴과 긍정적인 사고로 지내다보니 사람들은 내가 장애가 없는 사람으로 여겼고, 별 생각없이 나는 남이 하는 것을 모두 경험해보며 살아왔다. 지금까지 나의 좌우명은 “남이 하면 나도 할 수 있고, 남이 못하면 나는 시도라도 할 수 있다”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입 밖으로 표현해보지 않은, 부럽기도 하고 꼭 해보고도 싶지만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가능하면 의식 밖으로 밀어내고 피하려고 했던 그것은 남과 어깨동무를 하고 걷는 것과 소위 말하는 “나 잡아봐라”가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친구들과 걸어갈 때도 뒤쳐지는 게 싫어 늘 만날 장소를 미리 정해서 헤쳐 모이기를 선호했었다. 약속시간보다 30분정도는 미리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앉은 후 뒤에 오는 그들을 기다리는 게 편했다.

대학 졸업 후 지체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재활원에서 특수교사로 근무를 했었다. 학교는 병원과 직업훈련소와 함께 있었고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생들은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나도 어느 해에 시간을 잡아 그동안 괴롭히던 변형된 발가락을 교정하는 수술을 받았다. 입원을 하고 있던 기간 중에도 재활원내에 있는 학교에 출근을 했었다. 한가지 다른 점은 다리에 깁스를 했기에 휠체어를 타게 된 것이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휠체어를 사용하자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무엇보다도 친구들이 걷는 속도에 맞추어 함께 이동할 수 있는 게 너무도 신기했다. 친구들과 손을 잡고도 휠체어를 굴리며 갈 수 있었으니 그동안의 나의 부족함이 채워지는 기쁨이 있었다. 걸을 때 장애가 있었다면 휠체어는 그 장애를 지워준 것이었다. 영어로는 그 상황이 보다 정확하게 표현이 된다. 즉 휠체어로 신체적인 장애(Disability)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살아가는데 중요한 활동장애(Handicap)가 없어진 것이다.

성인이 되어 장애를 입은 중도장애인들이나 활동에 제약이 생긴 노인 중에 보장기구나 휠체어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장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스스로 장애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해 활동장애를 감수하면서도 불편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편견은 사실 장애(Disability) 자체보다는 그로 인해 활동에 제한을 받는 장애(Handicap)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애로 인해 일반인보다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고정관념이다. 그러나 장애 자체에 대한 편견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인정은 한다. 중요한 점은 내가 보장구나 휠체어를 거부한다고 해도 편견을 일으키는 장애(Disability)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휠체어로 활동기능을 회복하여 남들과 같은 보통의 삶을 사는 것이 편견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휠체어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며 특수교육 관련 세미나에 참여도 하고 남보다 빠른 빛의 속도로 관광까지 끝낼 수 있다. 직업 활동 외에도 휠체어를 타니 농구도 테니스도 스포츠댄스까지 스피드를 요구하는 모든 활동이 가능해졌다. 누가 만들었는지 참 효자상품이다.

그런데 아뿔싸! 약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속도전에는 강하나 대화상황에는 취약하다. 서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고개만 떨구면 되지만 휠체어 앉은 나는 고개를 뒤로 젖혀 올려다봐야 하니 잠시만 길게 이야기를 하면 머리가 아프다.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다지만 참 난감하다.

그런데 이 약점을 해결하는 훌륭한 방법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으나 실천을 잘 못하는 것이 있다. 가정교육 상담에서 늘 강조하는 것으로 어린 자녀들과 대화를 할 때 가장 좋은 자세가 무릎을 굽혀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그것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설계(Universal Design)라고 하는 최고의 대화방법이다. 우리 모두가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면 대화의 질도 높아지고, 공감력을 키우면 세상도 아름다워진다. 그리고 휠체어의 약점도 사라진다.

<김효선 칼스테이트LA 특수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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