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서재를 공개하기도 한다. 깔끔하게 편집된 공중파 방송만큼 진행이 매끄럽지는 않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시청할 수 있는 편이다.
새로운 책을 소개하는 코너를 보고 나서는 전자책 상점에 접속해서 비자 카드로 결제하고, 태블릿에 다운로드 받아 바로 읽는다. 나는 이것이 21세기에 해외 동포로 살아가는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드라마를 서울에 계신 부모님과 거의 동시에 시청하고, 화상 통화로 여자 주인공의 미모와 패션 센스를 칭찬하곤 한다. 가끔은 엄마가 놓친 회차를 내가 먼저 시청하고, 내용을 간추려 설명해 드릴 때도 있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다 보면 가끔 공통의 화제가 떨어져 서먹해질 수 있기에, 웬만하면 엄마가 보는 드라마는 나도 챙겨 보는 편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돈이 들지도 않는다. 엄마가 드라마 주인공이 바른 립스틱 색깔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하면, 같은 립스틱을 검색해 하나 선물할 때도 있다. 불과 사흘이면, 새 립스틱을 바르고 외출한 엄마의 셀피를 메신저로 받아볼 수 있다.
내가 여전히 엄마와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고 있더라도, 모녀 관계가 지금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서울에 살며 바쁘게 공부하고 일 하던 시절이 오히려 연락이 더 뜸했을 지도 모르겠다.
세월 참 좋아졌다, 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예전에는 그 말이 그리 와닿지 않더니, 80년대 초반에 이민 오신 우리 시어머님을 생각하면 세월 참 좋아져 마음이 아프다. 국제 전화 카드에 거금을 넣어야만 가족과 실컷 통화할 수 있었고, 좋아하시는 황석영 작가 소설책 하나 구해 읽기도 힘들던 날들을 살아오셨음을 잘 알기에 그렇다. 그러나 세월이 좋아진 덕분에, 요즘 우리 시어머님께 정 아쉬운 것 하나를 꼽자면, 오늘 티비에서 본 서울의 맛집을 내일 당장 방문할 수 없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화가 지연되고, 지역화가 확연해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기사를 읽었다. 부디 좋아진 것들이 예전으로 되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우리 시어머님을 위해 집밥 백선생은 건드리지 말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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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샌프란시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