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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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백세고래희’의 꼰대

2020-07-24 (금) 오해영 / 전 뉴욕상록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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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백세고래희(忍生百世古來稀 ) ’가 정답이 된 바야흐로 초고령화 시대가 도래 했다. 살기 싫어도 살아야 하는 꼰대가 됐다. 심여수(心如水)라고 같은 물이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같은 종이라도 생선을 싸면 비린내가 나고 국화를 싸면 향내가 나듯 우리 꼰대도 향내를 내야 대우를 받는 세상이 됐다.

노욕(老慾)의 아집은 지혜를 대신하고 뇌쇠가 총기 (聰氣)를 대신할 때 노욕은 싹트기 시작한다. 나이가 반드시 지혜를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불교는 나이를 먹을수록 욕심과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법구경 (法句經)에는 백발이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나이를 말한다라고 적혀 있다. 지혜의 빛은 사라지고 분수 모르는 추한 욕심만 남은 백발은 나이를 헛되게 먹은 것이다.

요즘 뉴욕한인 노인단체는 제법 많은 편이다. 모두 노인 복지사업을 한다는 봉사단체들이다. 젊어서 못 다한 봉사를 늙어서나마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는데 그 누가 뭐라 하겠는가. 참으로 존경과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봉사가 언론을 의식하면서 작든 크든 일한답시고 얼굴이나 내밀면서 자신의 관리를 치중하는 모습은 시대착오적인 아집이며 노인이라는 기득권으로 뭇 사람들로부터 대우나 받기위한 ‘포퓰리즘’적 쇼맨십이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한인사회는 노추(老醜)보다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무욕(無慾)과 깔끔한 자기관리로 보기만 해도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사람들이 있어 희망적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에서 이루어 놓은 전문분야의 실적을 후세들에게 전수하면서 어떤 단체이든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용히 봉사 하는 사람, 많은 실력의 소유자인데도 항상 제2인자로 묵묵히 봉사하는 사람. 젊어 못배운 것을 늙어 보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많이 하면서 협조해 주는 사람. 미운 소리 우는 소리 군소리 하지 않고 남의 일엔 칭찬만 해주는 사람. 이기려 하지 않고 항상 져주는 사람 등. 참으로 노년을 훌륭히 보내는 맑은 정신과 푸른 지혜를 ‘실사구사’ 하는 본 받아야 할 노인들이 많이 있다.

필자는 뉴욕 상록회에서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이사장 4년, 회장 4년, 모두 8년간 봉사 했다. 누구보다도 노인들의 심신을 잘 아는 편이다.
노인들을 위한 단체는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 노인들이 가장 잘 걸리기 쉬운 병이 탐욕이다. 그리고 아집이다. 고집이 세고 자기주관이 뚜렷하다. 그래서 서로 충돌 한다. 한번 돌아서면 영영 이별이다.

물론 다는 아니다. 입이 무겁고 말이 없으며 그렇다고 의견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다. 되는대로 흘러가는 대로 그냥 모든 것 받아들인다. 노인단체의 지도자는 운명의 바람과 물결의 전환에 따라 방향을 변경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항상 되어있어야 실패한 지도자를 면할 수 있다.

실과나무에 열리는 실과의 그 감미로운 맛과 향취처럼 우리네 인생 비록 향취는 사라져도 대지의 자양분에는 우리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또한 서천(西天)에 비친 황홀한 노을빛처럼 곱고 고상하게 늙어 가는 일이 우리 노인들의 마지막 할 일이다.

<오해영 / 전 뉴욕상록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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