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주도 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의 하나였다. 그 내용은 노동자들의 소득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면 이들의 삶이 윤택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늘어난 소득은 늘어난 소비로 연결돼 기업의 매출이 증가하고 이것이 수익 향상으로 이어져 근로자들의 임금을 다시 올려주는 풍요의 선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겉보기에 그럴 듯한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다. 경제를 성장시키기가 그렇게 쉽다면 어째서 세계 200여개 나라 중에서 이를 국가 정책으로 택한 나라가 없을까 하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 임금의 대폭 인상이야말로 소득 주도 성장의 핵심으로 보고 집권하자마자 이를 끌어올리는데 전력투구했다. 그 결과 2018년 최저 임금은 16.4%라는 역대 최고폭으로 올랐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문재인 정부의 기대와는 달랐다. 그 해 8월 청년 실업률은 외환위기 이후 최대인 10%로 치솟았다. 취업이 특히 악화한 것은 특별한 기술이 없는 단순 노동자들이었다. 낮은 인건비가 이들의 유일한 경쟁력이었는데 인위적으로 그 가격을 올리자 일자리가 마른 것이다.
급속한 임금 인상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청년과 알바생만이 아니다. 가뜩이나 과당 경쟁에 허덕이던 자영업자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자영업자 폐업률(신규 대 폐업업체 비율)은 89.2%를 기록했는데 이는 2016년 77.7%에서 크게 늘어난 것이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는 2019년 다시 10.9%라는 대대적인 최저 임금 인상을 밀어부쳤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청년 실업과 자영업자 폐업이 계속 늘어나자 2020년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해 최저 임금 인상은 2.87% 그쳤고 소득 주도 성장이란 말 자체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나 지난 주 내년도 최저 임금 인상률은 1.5%로 결정됐다. 이는 1998년 외환위기 때(2.7%)나 2009년 금융 위기 때(2.75%)보다 낮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 4년간 최저 임금 상승률은 7.7%로 박근혜 4년 평균 7.6%와 사실상 같아졌다. 이 꼴 보려고 그토록 최저 임금 대폭 상승을 외쳤나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 과도한 최저 임금 인상은 무리임을 실토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최저 임금 대폭 인상만이 살 길이라고 목 놓아 외치던 그 많던 전문가, 시민단체, 노조들은 어디 갔는가 하는 점이다. 이토록 소폭의 최저 임금 인상이 소득 주도 성장을 지고의 가치로 삼던 문재인 정부 아래 일어났는데 이를 문제 삼는 목소리는 죽은 쥐만큼 조용하다. 하긴 과도한 인상의 폐해를 지금이라도 알아차리고 방향을 전환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본적인 경제 원리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경제 원리는 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준다는 것이다. 급격한 최저 임금 인상은 노동에 대한 수요를 줄이고 이는 노동자의 소득 증가가 아니라 대량 실업을 불러오며 인건비 부담을 이기지 못한 영세 자영업자들의 줄도산을 불러 온다는 것은 예견된 일이다.
한국의 고질병인 비정규직 문제도 비슷하다. 한국의 정규직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해고하기 어렵다. 이런 노동의 경직성은 경기가 나쁠 때는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감원으로 인건비를 줄이고 싶어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해고가 어려운 정규직보다 아무 때나 자를 수 있는 비정규직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두 직업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노동 유연성을 늘려야 하는데 이는 고용 불안을 늘인다는 이유로 한국 사회에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제학의 창시자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착한 마음이 아니라 이기심 때문”이란 말을 남겼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타인의 행복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빵집 주인이 맛있는 빵을 만드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지 고객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소상공인과 대기업이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이들의 월급을 올려 주기를 바란다면 좋은 제품을 싸게 파는 회사가 번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수년간의 실책에서 교훈을 얻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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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