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구일까, 트럼프의 백기사는…

2020-07-13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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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 1929. 1968…. 난수표인가. 그게 아니다. 역사적 대사건이 일어난 해들을 가리키는 연도들이다.

1918년은 스페인 독감이 만연한 해로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명 이상이 희생됐다. 그 해에 끝난 제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수보다 3배나 많은 숫자다. 1929년은 ‘블랙먼데이’(Black Monday)와 함께 대공황이 시작된 해다. 1968년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된 해로 반전시위의 격랑 가운데 미국은 세대를 걸친 문화전쟁(culture war)에 돌입한다.

평생에 한두 번 겪을까 말까한 대사건들이다. 그와 유사한 엄청난 일들이 그런데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그것도 서너 달이란 짧은 기간 동안에. 코로나바이러스내습, 바로 뒤따른 증시폭락과 최악의 실업사태, 그리고 경찰의 과잉대처에 따른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과 인종폭동의 격랑에 이르기까지.


그래서인가. 이제 막 전반기가 끝났다. 그 2020년이 마치 10년 세월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불가해한 격변적인 사태의 연속. 그 가운데 치러지는 것이 2020년 대선 레이스다. 아직 본선 후보 간의 본격적인 유세전도 없었다. 그런데 대세는 벌써 결정 난 것 같은 분위기다.

한 마디로 밉보였다고 할까. 그래서 주류언론으로부터 줄곧 공격을 받아왔다. 거기다가 트럼프 백악관 3년은 스캔들로 지고 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가 2020년 들어 예고 없이 찾아든 것이 코로나바이러스 내습과 인종폭동, 쌍둥이 국가적 재난이다. 이 정황에서 현직인 트럼프는 궤멸적인 상황을 맞고 있다.

주요 여론조사마다 트럼프는 두 자리 숫자 이상으로 조 바이든에게 뒤처지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대선의 향방을 좌우하는 주요 경합 주에서도 지고 있다. 최근 갤럽조사에 따르면 지난6월8일에서 30일까지 기간 동안 트럼프 지지율은 내내 38%선을 맴돌고 있다.

올 대선은 단순한 ‘블루 웨이브’ 정도가 아니라 ‘민주당 쓰나미’가 예상된다는 것이 쿡 폴리티컬 리포트의 보도다. 트럼프는 1980년 레이건에게 대패한 카터와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란 것이 ‘펀딧’(pundit) 세계의 하나같은 전망이다.

앞으로 4개월 후에 치러지는 2020년 미국의 대선 본선은 그러면 보나마나한 게임이 되고 마는 것인가. 전혀 예기치 못한 사태로 이어져온 게 올 상반기다. 그러니 그 같이 예기치 못한 사태가 올 하반기에도 발생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을까.

“진보 좌파가 트럼프에게 생명줄을 던지고 있다.” 뉴욕 데일리 뉴스의 지적이다.


단순한 시위정도가 아니다. 폭동에, 방화에, 약탈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미국을 상징하는 것이면 죄다 깨부수기에 바쁘다. 그런 무정부상태 하에서의 폭력적 불법행위를 방관한다. 아니 오히려 조장한다. 누가. 일부 민주당 주지사나 시장들이. 바로 그들이 사면초가의 상황에 몰린 트럼프를 돕는 ‘백기사’로 등장하고 있다는 거다.

“트럼프는 갈등과 혼란을 필사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처 실패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고 또 중서부지역 경합 주 유권자들에게 ‘이러다가는…’하는 불안감을 심어주는 그런 갈등과 혼란을…”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Black lives matter’란 깃발아래 스며든 극좌세력. 정작 수백만 베네수엘라 난민의 고통, 중국의 강제수용소에 갇힌 수백만의 위구르인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러면서 경찰도, 조지 워싱턴도, 심지어 자기들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온건파 민주당 후보도 적폐요, 척결대상으로 몰아가는 그들은 트럼프에게 생명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독립 244주년을 바로 앞둔 2020년 7월3일. 장소는 워싱턴, 링컨 등 ‘위대한 미국 대통령들’의 거대한 바위얼굴이 조각된 마운트 러시모어 산기슭. 그 상징적 장소에서 트럼프는 마침내 포문을 열었다. 다음날 독립기념일 행사에서도 포격은 계속됐다. 위대한 미국의 역사를, 또 가치들을 말살하고 자라나는 세대를 세뇌시키려는 극렬좌파 폭도들에게 결코 굴복하지 않고 미국의 가치와 신념을 지켜가겠다고 천명했다. 미국적인 것은 모두 인종차별주의의 악인 양 몰아가는 세력에 대한 문화전쟁을 선포한 것.

진보 미디어들은 신랄한 비판에 나섰다. 트럼프의 연설은 다름 아닌 전형적인 ‘편 가르기’로 인종을 이슈로 삼아 표를 모으려는 책략에 불과하다는 것. 그게 다이고, 과연 그렇기만 할까.

보수성향이다. 그렇지만 트럼프에 비판적 논조로 일관해왔다. 그런 내셔널 리뷰지가 트럼프의 연설을 극력 옹호하고 나섰다. 러시모어 연설 이후 보수재집결의 분위기가 감돈다고 할까.

표심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싱크탱크 데모크라시 인스티튜트가 러시모어 연설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처져있던 트럼프 지지율이 경합 주에서 47% 대 47%로 바이든과 호각지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새삼 눈길을 끄는 것은 ‘Black lives matter’를 패러디한 ‘All lives matter’란 구호다. 미국식 적폐척결문화(cancel culture)라고 해야하나. ‘Black lives matter’란 미명 하에 미국적인 것이면 모든 것을, 심지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동상마저 파괴하려드는 극렬 좌파들의 움직임. 중국의 문화혁명 시 홍위병 난동을 떠올리게 하는 그들의 행태에 미국사회가 피로감을 보이고 있다는 신호로 보여서다.

11월 대통령 선거일까지 앞으로 4개월. 또 어떤 격변의 상황이 닥쳐올까. 그 기간 동안….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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