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게가 300 파운드가 넘는 30대 미혼 여성이었다. 그녀는 몇 달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감정기복이 매우 큰 양극성 기분장애(조울증)를 앓고 있었다. 의사를 만나러 올 때 가끔 지갑 속의 사진 한 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곤 했다. 10대 후반 가냘픈 몸매의 소녀 모습이었다. 정신질환을 가진 상당수의 여성 환자들처럼 그녀도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지니고 살았다. 어린 시절 몇 년 동안 양아버지한테 성추행을 당했던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움, 자신을 향한 수치심은 그녀로 하여금 자해행위를 하게 내몰았다. 가족들 몰래 화장실에서 면도칼로 피가 나올 정도로 손과 팔목을 긁어대면 야릇한 통증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자해행위는 오래가지 못하고 가족에게 들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퇴원 후에도 자해를 계속하여 서너 번 더 정신병원을 다녀온 뒤부터는 자해 대신 음식에 매달렸다. 마음껏 배불리 먹고 나면 마음은 후련해졌지만 체중이 점점 불어났다. 양극성 기분장애 치료약인 기분조절제, 항정신제, 항우울제 복용도 체중을 늘리는데 한 몫을 했다.
그녀의 한 가지 소원은 할리웃에서 창녀가 되는 것이었다. 양극성장애 치료약이 잘 듣지 않아 우울증상이 악화되면 그녀는 할리웃이 아닌 라스베가스로 떠나곤 했다. 그 곳에서 몸을 팔며 2-3개월 지냈다. 자기처럼 뚱뚱한 여자를 찾아주는 남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일종의 안도감, 자신감도 생겼다. 또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성취감과 자랑스러움도 느꼈다. 그러다보면 점점 우울증이 사라져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정성들여 치료해도 잘 좋아지지 않는 환자들이 정신과에는 다른 과보다 훨씬 많다. 어떤 정신질환자는 창의력이 좋아 자신만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아내 의사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환자의 아이디어를 부추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말릴 수도 없다. 이 환자도 그런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매춘은 먼 원시시대부터 세상 각처에 있었다. 사냥과 수집의 생활에서 농경사회로 들어가자 저장과 소유를 위해 전쟁이 더 잦아진 결과 여자 전쟁노예가 많아져 매춘도 더 성행했다. 국가나 종교단체는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 이유로 매춘을 불법과 죄악으로 다스렸다. 그러나 일부이기는 하지만 신성해야할 성당, 교회, 절, 시나고그, 모스크 안에서도 매춘은 은밀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가부장적 사회는 가끔 창녀를 희생양으로 삼아왔다. 남성우위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의 폭력성, 혐오 등을 힘없고 불쌍한 창녀에게 쏠리도록 해왔다.
이유야 어떻든 창녀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이어가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창녀는 사회 속의 필요악’이란 어느 사회학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희생자며 희생양이다. 최근 북 유럽국가에서 매춘 제공자보다 구매자를 처벌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더 나아가 합법적인 생활수단의 하나로 인정하자는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우리 모두 행복한 삶을 원한다. 부, 지위, 명예가 행복을 가져다주지만 한계가 있다. 남들이 자기를 받아줄 수 있을 때, 누군가가 사랑해 준다는 사실을 느낄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감에 젖어든다. 이러한 인정확증이야말로 크나큰 행복감을 안겨다주는 것이다. 인간의 뇌가 아무리 진화되었지만 아프리카의 사바나(초원)에서 살았던 원시시대 이후 인정욕구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DNA에 새겨져 내려오고 있다.
현실의 삶은 행복보다 불행의 소지가 훨씬 많다. 소원은 행복을 추구하고 인정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심리적 수단이다. 인정욕구 중에도 자신에게 인정받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앞의 여성 환자가 우울증이 심해질 때 라스베가스로 가는 것은 관심 밖의 존재에서 관심 안의 존재가 되고 싶은, 즉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창녀가 되고 싶다는 엉뚱한 소원은 DNA 속에 깊이 박힌 성적학대란 단어에서 벗어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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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