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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사망

2020-07-07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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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큰 도시는 어디일까. 베이징이나 상하이를 떠올리기 쉽지만 정답은 충칭으로 그 인구는 무려 3,000만에 이른다. 한 때 쓰촨성의 일부였던 이곳은 너무나 규모가 커 1997년 분리돼 베이징, 상하이, 티안진과 함께 중국 중앙정부의 직접 통제를 받는 4대 도시의 하나가 됐다. 한 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던 곳이며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중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등소평도 이곳 시장 출신이다.

이곳을 바탕으로 중국의 최고 권력에 도전하려던 사람이 있었다. 중국 공산당 8대 원로의 아들이던 보시라이가 그다. 충칭의 공산당 서기를 역임하며 조직범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반부패 캠페인을 펼치며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룩해 일약 중국 차기 지도자 반열에 올랐던 그는 2013년 돌연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 아내 구카이라이와 함께 영국 사업가 닐 헤이워드 살인 혐의에 연루돼 모든 공직을 잃고 공산당에서 축출됐으며 부패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종신형에 처해진 후 지금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보시라이 사건은 중국에서 아무리 유망한 정치인이라도 한번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있다.

중국은 랭킹 2위의 경제 대국이지만 현지 분위기는 서방과 매우 다르다. 우선 구글이 작동하지 않는다. 당연히 이메일도 안되고 검색도 할 수 없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릿 저널 등 세계 주요 언론도 접속할 수 없다. 중국 정부가 보안을 이유로 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VPN(Virtual Private Network)을 깔면 이를 우회할 수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불법이다.


중국에서는 일단 공안에 찍히면 개인이 빠져나갈 틈은 없다. 당이라고 하나밖에 없는데다 이 당이 국가의 입법, 행정, 사법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홍콩인들이 작년 대대적인 시위를 벌여 ‘중국 송환법’을 폐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단 홍콩에서 체포된 인물이 중국 본토로 넘어가면 그 사람의 운명은 끝났다고 봐도 된다. 법과 증거가 아니라 중국 정부의 입맛에 따라 재판 결과가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송환법 폐기로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던 홍콩인들에게 더 큰 사태가 벌어졌다. 중국 정부가 이보다 강력한 ‘홍콩 보안법’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지난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이 법은 홍콩에서 국가 분열, 국가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무기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은 또 사건이 복잡, 심각할 경우 중국 보안처가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사실상 중국 정부에 홍콩인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전권을 주고 있다. 사소한 말과 행동도 중국 정부가 안보를 저해하고 분열을 조장한다고 판단할 경우 잡아다 무기한 비밀로 조사할 수 있다. 이 법은 중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도 적용 대상으로 하고 있어 중국에 비판적인 언론인이 홍콩에 갈 경우 같은 혐의로 조사받을 수 있다.

홍콩은 1842년 중국이 아편 전쟁에서 패하면서 영국 손으로 넘어 갔다. 영국은 1860년 제2차 아편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인근 구룡반도를, 1898년 인근 신계까지 차지한 후 99년 조차권을 따냈다. 이것이 끝나는 1997년 중국은 홍콩을 돌려받아 치욕의 역사를 씻기 원했고 홍콩을 지킬 능력이 없던 영국은 50년간 홍콩의 자치를 보장하는 소위 ‘일국양제’를 조건으로 넘겨주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 꼭 23년이 지난 7월1일 홍콩 보안법이 시행되면서 이 약속은 휴지로 변하고 홍콩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내 일개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홍콩은 특이한 도시다. 인구 750만의 이 도시는 인구 당 억만장자 수가 세계에서 두 번 째로 많고 고액 자산가 수는 가장 많다. 고층 빌딩 수도 세계 1위고 평균 수명도 세계에서 가장 긴 편이다. 천혜의 항구라는 것 말고는 내세울 것 없던 작은 섬이 경제적 자유와 낮은 세금, 법의 지배와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만으로 어느 시대, 어느 지역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부를 창출해냈다. 그러나 이 자랑스런 도시가 홍콩 보안법의 시행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 하고 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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