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통곡의 날’을 맞은 홍콩

2020-07-06 (월) 옥세철 논설위원
크게 작게
사람들이 무더기로 체포돼 줄줄이 끌려간다. 15세의 소녀까지. 단지 ‘홍콩독립’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깃발을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마구 쏴대는 강력한 물대포. 곤봉을 휘두르는 전투경찰. 비명을 지르며 쫓기는 시민들.

2020년 6월30일 밤 11시부로 발효된 이른바 국가 보안법이 강행된 이후 홍콩의 모습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독립적 사법시스템. 법치주의. 이런 것들이 하룻밤 사이 증발된 상황에서 홍콩민주화 운동의 기수 조슈아 웡은 시편 23편4절의 말씀 게시와 함께 홍콩독립을 주장해온 ‘데모시스토당’ 해체를 선언했다.

한 마디 말을 트집 잡아 3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가혹하기 짝이 없는 보안법으로부터 민주인사들을 보호하고 보다 유연한 방식의 저항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첫날인 2020년 7월1일은 영국이 홍콩의 주권을 중국에 이양한 지 23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날이 결국 통곡의 날이 되고만 것이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27개 국가가 보안법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미국은 제재조치를 발표하고 영국과 대만은 홍콩인들에게 시민권을 제공하는 등 국제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홍콩은 공산 전체주의 중국 통치하의 일개 시(市)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삶의, 일상의 한 부분으로 당연시되던 것들이 하나둘 소리 없이 주변에서 없어지는 운명을 맞은 것이다. 교회, 독립적인 사립학교, 시민단체, 자유언론 등등. 표현의 자유 박탈로 심지어 웃음마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자유 가운데 번영을 구가하는 도시. 바로 그 모델이 홍콩이었다. 자유가 박탈된 홍콩의 장래는 그러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도시 곳곳에 건축물과 기념물이 서있다. 그런데 인간의 온기, 삶의 향기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 박제된 도시, 애잔한 역사의 잔영이랄까, 폐허의 느낌을 주는 분위기. 오랜 공산치하를 겪은 우크라이나의 남서쪽 흑해에 면한 도시 오데사의 오늘 날 모습이다. 그 오데사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되는 것은 아닐까.


러시아제국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가 오토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오데사를 러시아영토에 편입시킨 해는 1792년이다. 이후 항구건설과 함께 오데사를 관세가 없는 자유무역항으로 개방했다. 자유와 기회를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전 유럽에서. 그리고 박해만 받던 유대인들의 커뮤니티까지 형성되면서 오데사는 영광의 시절을 맞는다. 19세기, 한 세기 내내 다양성과 번영의 세월을 구가하면서 ‘흑해의 진주’로 불리게 된 것.

번영의 시절은 자유의 박탈로 막을 내린다. 유대인 추방 포고령이 그 전조다. 한때 오데사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던 유대인들이 쫓겨나기 시작한 것. 결정타는 공산주의다. 볼셰비키 혁명과 함께 이 흑해연안의 도시를 공산당이 장악하자 사람들은 전 세계로 흩어졌다.

이후 대대적 아지프로(agitprop-선동선전)가 펼쳐졌다. 그 뒤로 찾아온 것은 대기근이다. 소비에트 러시아에 편입된 오데사가 맞은 운명이다. 그 공산치하에서 해방된 지 30년이 가깝다. 그렇지만 공산당이 안겨준 상처는 아직도 깊은 자국으로 남아 있는 것이 오데사의 오늘날 모습이다.

1949년 중국대륙이 공산화되자 자유를 찾아 피난민의 물결이 몰아닥쳤다. 월남전 이후에는 보트 피플이 몰려왔다. 거기에다가 세계 곳곳,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 이민 그룹 특유의 역동성이 넘치는 곳. 그럼으로 해서 다양성과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던 곳이 홍콩이었다. 그 자유와 번영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자유와 공산 전체주의와의 대결에서 공산주의가 일단 승리를 거두었다고 할까. 그것이 2020년 7월 이후 700만 홍콩주민들이 맞은 상황이다. 공산당의 승리는 그러면 영구적일까.

홍콩 사태는 두 가지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베이징이 약속한 일국양제는 허구였다는 것이 그 하나. 그리고 중국공산당은 국제협약을 멋대로 무시하는 믿을 수 없는 체제라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제사회의 중국에 대한 신뢰는 코로나19 만연과 함께 크게 추락했다. 그런데 그 팬데믹 위기를 틈타 시진핑 체제는 홍콩 목조르기에 들어갔다. 그 중국을 국제사회는 방관만 하고 있을까. 반동은 반동을 불러오는 법. 그래서 나오고 있는 것이 홍콩상황은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연합전선구축을 촉진시킬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진핑의 중국은 소련제국 붕괴를 가져온 소비에트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월드 크런치의 진단이다. 월드 크런치는 ‘전랑외교(戰狼外交)’라는 도발적인 외교 전략을 그 한 예로 지적하면서 유연성을 상실한 시진핑 체제는 과도한 중화 내셔널리즘 추구와 함께 결국 소련 패망의 길을 그대로 걷고 있다는 경고를 날리고 있다.

그 전망은 그렇다고 치고 당장 공산당 통치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게 된 당사자들은 700만의 홍콩주민들이다. 그들을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목소리를 높여야 때가 아닐까. 바로 지금이.

<옥세철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