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전병과 말라리아

2020-07-04 (토)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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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갈등이 더욱 표면화되고 있다, 혹자는 인종은 절대 섞일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같이 살아가야한다. 어느 순간에든 누구든지 강자에서 약자로 바뀔 수 있기에 서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인종간의 의학적인 차이를 알아갈수록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인종 속에 흐르는 유전성이 질환을 결정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나 살아온 환경의 특성이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밝혀지고 있다.

천재가 많은 아슈케나지 유대인들도 유전병에 대한 고심은 적지 않다. 세계에 흩어져있는 유대인의 80%를 차지하는 이들은 약 1,2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대학살 때 희생당한 600만 명의 대부분이 아슈케나지 유대인이었다. 이들에게는 타이삭스 병, 낭종성 섬유화증, 고셔씨병 등의 유전병들이 특히 많다. 타이삭스 병은 몸의 노폐물을 제거해주는 효소가 없어 노폐물이 쌓이게 되고 그것이 뇌와 신경계에 축적되어 증상이 심화되는데 치료법이 없어 4세 이전에 사망하게 된다.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타 종족과 피를 섞지 않는 근친혼을 고수해 왔기에 똑똑한 유전자도 대대로 내려오고 있지만 유전병도 대물림해오고 있다. 이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밝히기를 꺼려해왔는데 그 사회에서 본인과 가족들이 피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4명의 자녀를 타이삭스 병으로 잃은 한 랍비는 “정의로운 세대를 위한 유대인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결혼을 앞둔 남녀에게 유전자 검사를 한 후 그 결과를 개인적으로는 알려주지 않고 검사결과를 보관하고 있다. 두 남녀가 서로 혼인할 생각이 있을 때 자식이 유전병에 걸릴 확률을 알려주고, 유전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남녀들은 결혼을 피하게 된다. 지금까지 최소 67쌍의 남녀가 혼인 계획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의학적 궁합보기’를 인간의 자율성 억제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공포의 질병 중 한 가지인 말라리아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간을 죽인 병원균성 질병으로 추측된다. 지금도 모기에 의해 쉽게 감염되어 세계기준으로 매년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있으며, 전체 사망자의 약 87%가 아프리카 지역의 5세 미만 어린이이다.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률이 10% 이상이나 되는데 감염된 학질모기에 물리면 모기 침샘에 있던 말라리아 원충이 혈액내로 들어가고 간으로 가서 증식한 후 사람의 적혈구로 침입한 후 적혈구를 파괴하며 발열하게 된다. 뇌로 가면 뇌염으로 혼수상태로 될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말라리아 위험지역에서 흔히 나타나는 유전병, 낫 모양 적혈구 빈혈증(sickle cell anemia)을 가진 아프리카인들은 말라리아에 저항성이 있어 적혈구가 쉽게 파괴되지 않는다. 이 유전병은 적혈구에서 산소를 나르는 역할을 하는 헤모글로빈의 단백질 하나가 바뀌어서 일어나는데 원래 동그란 모양의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바뀌게 된다. 낫 모양의 적혈구는 유연성이 떨어지고,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는 쉽게 파괴될 수 있지만, 말라리아에는 강하다. 낫 모양의 적혈구 안에서는 말라리아 병원충이 잘 증식을 못하기 때문이다.

낫 모양 적혈구의 유전인자가 발생하게 된 것은 서아프리카에서 숲을 개간하는 과정에서 늪지가 형성되고, 말라리아가 극성을 부리면서 그곳의 주민들이 살아남기 위해 몸에서 유전적인 변형이 일어난 것으로 추론된다. 그러나 이 빈혈증을 가진 환자들은 심한 빈혈과 산소 부족현상, 박테리아 감염증으로 수명이 단축된다. 말라리아에 살아남기 위한 유전변형이 다른 질환을 일으키게 되었다. 또 다른 예가 있는데 아프리카 서부, 중부 지방에 널리 퍼져있는 수면병은 체체파리가 사람을 물때 기생충을 옮기면서 유발되는데 중추신경계를 침투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다. 아프리카인 중에서 수면병에 강한 유전변형인자 APOL1 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가진 사람들은 수면병을 일으키는 기생충에는 강하지만 신장병이 잘 생기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느 인종이든 장점이 있으면 약한 유전적 부분들이 있고 주어진 환경에서 힘들게 적응하느라 약해진 부분들이 있다. 우리는 절대자 앞에서 모두 겸손해질 수밖에 없고 서로 돕고 살아야 할 연약한 갈대들이다. 인간은 쉽게 꺾여지는 갈대이지만 정의를 생각하기에 위대한 존재가 아니던가. 정의란 무엇인가? 더 알고, 더 가진, 힘 있는 자들이 사회적 약자를 끌어주는 것이 아닐까?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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