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지고 장미 붉은 잎이 흩날리니 봄이 떠나고 있다. 올해는 포근한 봄의 어깨를 한번도 보듬어주지 못한 채 홀로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있다. 넓고 투명했던 창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굵은 쇠창살을 박았고, 철책을 내려 빛을 앗아갔다. 바깥세상은 캄캄한 어둠으로 변했고, 우리는 방에 고립되어 시각을 잃은 채 귀만 열고 살았다.
한 세계가 닫히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일까? 눈을 감고 있을 때 말이 더 잘 들리는 것처럼, 어쩌면 내면의 눈이 더 밝아지는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세상이, 내가 모르던 자신과 아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 인생을 요약하면, 바쁠 망(忙)이다. 공사다망해서 쉴 새 없이 달려왔다. 평생 물 관리와 환경 일에 종사했고, 은퇴 즈음에 한의대를 8년간 다녔다. 그리고 매달 신문 칼럼을 쓰고, 문학 모임을 이끌어 온지도 스무 성상이 넘었다. 촌음을 아끼며 산 세월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눈을 감으니 다른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쁠 망(忙)이란 마음(心)이 쫓기면 망(亡)할 수밖에 없다는 서늘한 깨달음이다.
쉴 휴(休)를 비로소 보았다.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댄 모습이 편하다. 욕심없이 쉬엄쉬엄 살아온 사람들의 나뭇짐이 오히려 푸짐하다. 물질을 떠나 정서적 곳간도 더 널찍하다. 어쩌면 쉬면서 도끼날을 벼르는 재충전의 지혜가 내겐 없었던 건 아닌가 하는 자괴심이 들었다.
아내와 24시간을 지내면서, 또 하나의 발견은 이순 넘긴지 오랜 내가 아내에게 쉽게 서운해 한다는 사실이었다. 젊고 바삐 살 때는 몰랐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온갖 정성으로 남편을 살갑게 받드는 딴 집들의 모습이 내심 부러웠다. 평생 가정을 돌봤고, 지금은 아내가 조금만 아파도 한방치료를 서두르는 내게 아내가 너무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럴 때마다 괜히 윽박지르거나 쌩하니 찬바람을 일으켰다.
그런데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니 내 속에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있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생계를 위해 홀로 뛰신 어머니의 자상한 보살핌을 그리워하는 아이가 내 속에서 떼를 쓰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내에게 존경받는 남편이 되려고 애써 대범한 척 살아왔는데, 내 속 아이의 상처를 달래주어야 할 때가 왔음을 느낀 것이다.
다행히 속 눈이 밝아지니 치유의 첫 걸음이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아내의 약지가 검지보다 훨씬 긴 것을 처음 발견한 것이다.
‘손가락 길이와 호르몬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는 영국의 존 매닝 교수가 1990년대부터 주도해왔다. 그는 남녀불문하고 태아가 남성호르몬에 많이 노출되면 약지가 발달하고, 상대적으로 여성호르몬에 더 많이 노출되면 검지가 길다고 밝힌 것이다. 그 후 이 분야 연구가 봇물 터지듯 했는데, 400여편 논문들이 매닝 교수의 연구결과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아내가 소소한 애정표현 대신, 대범하고 실용적인 성격은 타고 난 천성이었다. 예전에도 모른 건 아니었지만 내가 떼를 쓰거나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아내의 긴 약지는 조물주의 뜻. 내 믿음이 착오였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도움은 영성 깊은 김기석 목사님의 짤막한 메시지에서 왔다. 그는 부부 행복의 비결은 배우자에게 덕 볼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촌철살인의 한마디였다. 그리고 늙어가면서 긍휼한 마음을 가지라고 했다. 슬픔과 고난의 강물에 잠겨도 같이 견뎌내자고 했던 그 첫 언약을 기억해내야만 비로소 배우자의 시린 어깨를 측은지심으로 감싸줄 수 있다고 했다. 순간, 아내 덕 볼 생각으로 불만에 찼던 내 속의 어린아이가 보였다. 얼굴을 붉히며 그 아이를 가슴에 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 속에 유폐되어 산 지난봄은 어둡고 긴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이었다. 육체는 병들고 소멸되어가는 엔트로피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어둠을 뚫고 미세하게 들려온 내 속의 울림이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 속에서 오래 곪았던 상처를 핥고, 같이 늙어가는 아내의 주름과 긴 약지를 고마움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이 기적같은 시간은 아마도 성 어거스틴이 말했던 은총의 시간,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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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