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대한민국 납세자들이 지어준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그 건물이 한 순간 산산조각 났다’-. 북한이 공개한 그 폭파 영상을 CNN은 아주 뛰어난 연출력이 돋보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코로나 19 팬데믹. 미국을 휩쓸고 있는 인종폭동. 중국과 인도의 국경충돌. 이 와중에 세계의 이목을 쏠리게 하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북한의 불쾌감과 대한민국, 더 나가 미국을 향해 품고 있는 강렬한 적개심을 벽돌과 콘크리트 조각들이 튀는 폭발을 통해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도대체 어쩌자고 이런 짓을 하는 것인가. 6.25 70주년의 해를 맞아 또 한 차례 전면전이라도 벌이겠다는 신호탄이라도 쏘아올린 것인가. 아니면.
해석이 구구하다. 본격적 대남 도발의 서곡이다, 트럼프에게 대화를 하자는 신호다 등등. 대다수 전문가들의 시선은 그렇지만 어딘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북한 내부로 쏠리고 있다.
“이번의 북한의 대남위협 명세서는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마이너급에 불과하다.” 아시아타임스의 앤드루 새먼의 말이다. 북한이 맞은 심각한 경제 상황과 외교적 실패를 가리기 위한 연막전술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나가 이런 진단도 나온다. ‘북한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격화되고 있는 신호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의 행보가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벤트도 그렇다. 그 모든 공로(?)를 김여정에게 돌리면서 북한 언론들은 ‘중요정책 결정자’로 띄우고 있다는 것이 CNN의 분석이다. 그러니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백두혈통이 이어지도록 권력승계 후계자로 키우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것.
반면에 김정은은 지난 4월과 5월에 이어 또 다시 수 주째 공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쉬지 않고 현지지도를 나간다. 그 자리에서 즉석지침을 내리는 김정은의 모습으로 도배질하다 시피 했던 것이 북한의 언론이다. 그게 안 보이는 것이다. 무슨 일이 난 것인가.
“외부 관측통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종의 사태가 북한 내부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 한 가지 가능성은 김정은의 신상에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일 수 있다. 특히 김여정이 군사문제에서도 자신의 이름으로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지적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만연으로 경제가 무너지면서 배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자 군부가 동요하고 있는 상황도 또 다른 한 가능성으로 제시됐다. 종합하면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 리더십 혼란까지 겹쳐 북한 내부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거다.
3개 미 항모전단이 서태평양해역으로 전개 되는 등 미국의 전략자산이 한반도 인근으로 집중 배치되고 있다. 왜. 불안한 내부 사정과 관련해 미사일 발사도발에서 체제붕괴에 이르기까지 북한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판단과 함께 취해진 것으로 내셔널 인터레스트지는 보고 있다.
관련해 새삼 주목되는 것은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발언이다. 지난 16~17일 하와이에서 열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양제치 중국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의 비공개 회담에 배석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북한에 관해 중국과 협력하기 위한 길을 찾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코로나 19 위기 책임론에서 무역전쟁, 홍콩사태 등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돼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문제가 하와이회담에서 주요 의제로 다루어졌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뭔가 북한 내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내려지는 결론은 무엇인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고 했나. 존 볼튼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말을 빌리면 ‘한국의, 다시 말해 문재인 정부의 창조물’인 미-북 비핵화외교 말이다. 그게 사기극에 가까운 쇼로 드러나면서 처참하게 막을 내린 것이다. 폭발의 거대한 굉음과 함께.
이후 2020년 하반기의 한반도는 냉전시대를 방불케 하는 ‘싸늘한 계절의 연속’, 아니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혹은 더 엄혹한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관측통들의 전망이다.
북한이 단순 대남도발 수준을 넘어 대륙간 탄도탄 미사일 실험발사 등 도발을 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재선이 걸린 대선가도에 정치적 궁지에 몰린 트럼프는 초강경대응으로 국면전환을 모색하게 되고 그 경우 한반도 정세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것.
이 지경의 상황에서도 ‘역시나…’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것은 문재인대통령의 북한을 향한 초지일관의 구애자세다. 딸 나이의 김여정으로부터 온갖 수모를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통해 상황을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평화 도그마의 몽상에라도 빠져들었는지 이미 파산상황을 맞은 대북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거다.
오직 평화를 추구하는 그 모습이 비장하다고 해야 하나. 마치 시지프스 신화의 주인공인 양. 아니면 집단사고에 빠져든 가신들에 둘러싸인 벌거벗은 임금 같은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멀리 바라보이는 문재인 청와대. 그 모습은 비극이 지나쳐 이제는 아예 코미디(이걸 다크 코미디라고 하던가)로 비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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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