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일생을 살아가는 의지 처인 인간의 몸을 정보(正報)라 하고, 인간의 몸이 의지하고 있는 환경 즉 물질계의 모든 것을 의보(依報)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둘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간다.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세상의 생태계가 서로 다른 것들과의 상관속에서 보이지 않지만 유기적인 연관을 주고받으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공기며 햇볕이며 구름이며 바람이며 이 어느 것 하나 정보와 의보의 두 가지로서 모두 중생들의 업에 의하여 생성되고 성립되며 쇠퇴하여 파괴되지 않는 것은 없다.
이러한 세계의 성립과 파괴되는 모습에 관한 내용이 경전에 자주 등장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많은 이들이 세계(世界)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는 것이라 하겠다.
불교에서 세계의 뜻에 세(世)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천류(遷流, 인간 세상이 쉬지 않고 변천함)하는 바가 되면서도 가지가지의 모든 법은 서로 차별하여 섞이지 않는다. 또 세(世)의 유루법(有漏法)은 반드시 나고(生) 머물고(住) 달라지고(異) 소멸(滅)되는 네 가지 과정을 번갈아 가면서 찰라찰라에 변하고 훼손되고 부서지게 된다.
세계의 뜻에 계(界)는 방분(方分)의 뜻이어서 시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에 통하여 변화하고 파괴되며 한편 공간적으로 서로, 동 서 남 북 위 아래 등이 구분이 정해져 있어서 서로 뒤섞이지 않음을 말한다.
이러한 세계가 파괴될 때 세 종류의 긴 시절이 있으니, 잔혹한 전쟁의 시절(刀兵) 굶주림의 시절(飢饉) 전염병의 시절(疾疫)이라 한다.
첫째, 잔혹한 전쟁의 시절에 사는 사람들은 행동이 바르지 않고, 말이 순하지 않고, 삿된 소견과 뒤바뀐 생각으로 나쁜 업을 함께 행하니 이때의 중생들은 서로 다툼으로 수명이 짧다. 그들은 부모님께 불효하고, 스승과 웃어른을 공경하지 않으면서도 남들로 칭찬과 존중을 받으며 명예를 즐긴다. 자비가 없는 마음과 깨끗하지 않는 마음을 내기 때문에 서로 해치는 악업을 짓게 된다.
둘째, 굶주림의 시절에 사는 사람들은 많은 악한 업을 행한 인과로 비가 오지 않거나 홍수 또는 큰 태풍 등 자연재해가 생겨 많은 동 식물들이 살수 없게 되어 모두가 힘들게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살기 힘든 시절을 말한다.
셋째, 전염병의 시절에 사는 사람들은 착한 일을 하려하고 바르게 살려고 하지만 그전에 방일하게 살아온 인연으로 사람이 아닌 중생(非人)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병에 걸려 죽게 된다. 이러한 전염병은 사람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여 답답하고 세상을 어질게 만들며, 아무리 막으려 해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병으로 인해 많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환경과 공간으로서의 사회와, 시간적 제약의 시대에서 함께 고통(苦)을 겪으며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중생연(衆生緣)·중생업(衆生業)·중생심(衆生心)이라고도 한다.
인간이 자연을 떠나서 잠시도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자연과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모든 흙과 물이 모두 나의 옛 몸이고, 모든 불과 바람은 모두 나의 진실한 본체라고 한다.
어지러운 시절 서로 자비로써 도와주고 보호하며, 해치는 마음 없이 측은한 마음으로 함께 힘든 시절을 잘 극복하길 간절히 빈다.
글을 마치며 필자가 자주 사용했던 옛 선사의 글귀가 생각난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자기 마음에 적합한 환경을 찾으려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자기 마음을 환경에 맞춰가며 살아간다. 극락이 어디 따로 있나? 보리심(菩提心)으로 바라보면 이 세상 모든 곳이 다 편안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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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 스님 / 뉴저지 원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