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쯤 오리라던 비가 마음을 바꾸었나보다. 밤새 비가 내리는 소리를 들었고, 빗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밖을 보니 어린잎은 어제보다 한 뼘 더 푸르러져 있었다. 산다는 것이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언제부터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견디고 지내다보니 벌써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주말도 휴일도, 낮도 밤도, 늘 같은 모습으로 반복되는 일상이 시간의 흐름조차 잊고 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자가 격리가 풀려도 그동안 세상과의 단절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스스로를 외톨박이로 만들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는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을 일기장에 적어두기로 한다.
모든 문들은 광장으로 가는 길을 향해있다. 창문 또한 빛이 있는 곳을 향해 내어져 있음을 알고 난 후, 누군가의 마음 한켠에 세 들어 살려면 내 마음 한켠도 내어주어야 한다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억지로라도 문을 닫아걸고 스스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택했던 젊은 청년이 있었다. 초여름의 건조한 뜨락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던 저녁 무렵이었다. 나는 노을로 채색된 뒤 늦게 배달된 편지를 받았다.
하루하루를 맨 밥을 먹듯이 살고 있다는 그의 첫 문장을 보고 나는 읽기를 포기했다. 나와 다르지 않은 홑겹의 마음이 보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깊은 좌절감이 배어버린 그의 얼굴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이미 어둠이 깊은 저녁이어서 그의 글을 읽기가 불편했음에도 불을 켜지 않은 채 오랫동안 의자 깊숙이 앉아있었다. 어쩌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그의 언어가 아니라 그에게 건넬 어떤 위로의 단어도 찾지 못하는 나의 외로움 때문이었다. 기다림은 늘 일방적인 것이어서 마음을 접을 때까지는 유효했다. 그날, 저녁의 뜨락으로는 꽃잎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봄이 강을 건너온 탓인지 바람이 불면 공연히 마음이 설레었다. 여름날의 소나기는 아니었지만 한차례 쏟아진 굵은 빗방울이 깨우는 흙 냄새를 꼭꼭 밟으며 걸었다. 내친김에 바다가 보이는 공원까지 달려갔다. 드문드문 바닷가를 거니는 사람들 등 뒤로 천천히 노을이 번졌다.
멀지 않은 곳에 젊은 여자가 바닷물에 다가서더니 가지고 있던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왠지 그녀의 뒷모습에서 바다를 향한 슬픈 눈이 보이는 듯해서 마음이 쓰였다. 고개를 든 그녀가 울고 있었고, 그녀도 내가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어림잡아도 우리아이들 나이로 가늠되는 젊은 여자였다.
누구를 위한 꽃다발이냐고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이틀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고 오늘이 돌아가시고 난 후 맞이하는 생일이라고 했다. 불과 이틀이라는 찰나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죽음과 탄생을 온전히 목도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저 여린 짐승이었다. 그녀의 작은 꽃다발이 그녀가 자란 스페인의 작은 어촌에 언제쯤 다다를지 모르지만 그녀의 소망대로 그 날이 꼭 올거라고 얘기해주었다.
낯선 이가 함께 공감해주는 일이야말로 어떤 위로의 말보다 지금 그녀에게 최고의 위로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설령 간다 해도 임종조차 볼 수 없는 이 엄중한 시절에 그녀가 느끼는 그리움과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이승을 떠날 때는 홀가분하게 나서는 것이 좋다고 해도 가족들과 격리된 채 홀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이의 마음도 젊은 여자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승이나 저승이나 감당할 수 없기는 어차피 같을 것이었다.
바다 길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어린 새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갑자기 하늘 높은 곳에서 맴돌던 어미새가 다급하게 내려앉았다. 누군가 말하기를 어미새는 그 어떤 비바람에도 자기 새끼의 울음소리를 기억한다고 했다. 어쩌면 어미가 되는 순간 어미새의 귀는 새끼만을 향해 열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확히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었다.
사람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텅 빈 저녁 바다는 마치 너무 일찍 도달했던 기차역에서 만났던 고요와, 너무 늦게 와버려 폐가처럼 삭막했던 적막이 만나는 느낌이었다. 새들도 식별이 불가능할 것 같은 어둠속에서 나는 늘 왜소함을 느꼈었다. 그리고 그 왜소함이 어디서부터였는지를 기억해냈다. 오늘 아침, 잡초에 가려진 장미를 본 이후 나는 혼돈에 빠졌었고, 어머니가 유독 좋아했었던 꽃이 떠올랐고, 오래된 그 계절에 좋아하던 붉은 장미를 보지 못하고 소풍가듯이 갔던 어머니가 소환되었다. 젊은 여자가 어린 짐승처럼 서서 울먹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 혼란의 시절에도, 마음 한켠에는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음을 보고 온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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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선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