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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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영웅은 ‘아버지’

2020-06-12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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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길고도 지루한 자택대피명령이 지역별로 해제되어 가면서 뉴욕 주도 경제정상화 확대화가 이뤄지고 있다. 여전히 코로나19의 공포가 암흑 속에 존재한 가운데 위험을 무릅쓰고 선행을 베푸는 시민 ‘영웅’들의 존재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의사, 간호사, 환자 이송 차량 운전자, 응급요원, 소방관, 너싱홈 직원, 환자폐기물을 치우는 청소부 등이 최우선적으로 ‘시민 영웅’ 칭호를 받는다. 우리 이웃에도 보이지 않는 영웅들이 많다.

도시락을 만들어 의료진이나 저소득층에게 배달하는 식당 주인, 마스크와 세정제를 지역사회에 전달하는 단체, 서류미비자 돕기 성금을 내거나 직접 마스크나 간식을 만들어 병원에 전달하는 개인도 있다.


정신적으로 피로하고 지친 이들을 위해 희망의 노래를 들려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 중의 하나인 북미한인교수협회는 사이버 콘서트를 시작했다. 이처럼 물심양면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함께 하는 소시민들이 리더십 부재의 미국에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영웅이란 원래 난세에 세상을 구하고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데 큰 힘을 주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요즘 보니 국민이 뽑았던 리더가 아니고 선출직 정치가도 아닌, 떠오르는 영웅은 바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는 일반인이다.

아, 그리고 서민 영웅에 우리가 먹는 식품 및 일상용품을 배달하는 배송기사들도 빼놓을 수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 재택근무, 자택 대피행정명령에도 우선 먹어야 산다. 화물자동차 운전수들은 전국의 고속도로와 지방도로를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누비고 다니면서 부지런히 먹을 것을 실어 날랐다. 마켓에 생필품을 배달함으로써 우리는 먹고 마시고 볼 일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생필품을 사러 가는 이들은 누구일까? 어머니가 장을 보러가는 가정도 물론 있지만 요즘 들어 대형마켓에 생필품을 사러가고 차로 실어오는 대다수가 아버지고 아들이다. 과거에는 마켓에 가면 아버지는 주차장 차안에 있고 어머니들이 주로 마켓에 들어가서 필요한 식품을 샀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머니나 아내는 집안이나 차안에 꼼짝말고 있으라 하고 아버지 혼자 보무당당하게 마스크 쓰고 장갑 끼고 장을 보러간다.

대형마켓 앞에 한시간 이상 사회적 거리두기로 줄을 섰다가 드디어 들어가서는 고기와 야채, 물, 빵, 화장지 등 생필품을 산 다음 나오자마자 끼고 있던 마스크와 장갑을 버리고 새것을 착용한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이 오면 현관에서 박스부터 뜯고 정리하는 이도 아버지다. 이처럼 위험하고 무겁고 힘든 생필품 보급에 아버지의 역할이 크다.

이 변화된 세태를 보면 원시 수렵시대가 떠오른다. 그 시절 가장 능력 있는 아버지는 사냥에 뛰어난 이였다. 많은 사냥감을 잡아와 가족들을 배불리 먹이는 자가 가장 능력 있는 자로 인정받았다. 현재의 아버지는 사냥터(직장)가 아닌 가족들을 먹일 양식을 사러 대형마켓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수렵채집 시대에는 활, 투창, 독침, 돌팔매로 사냥감에게 타격을 입힌 다음 오랫동안 추적해 사냥을 했지만 요즘 아버지의 무기는 마스크, 안면 투명가리개나 모자, 비닐장갑, 세정제이다.

오는 6월21일은 아버지의 날(Father’ s Day)이다. 1916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 시절 아버지의 날이 미 전국에서 행해지기 시작한 이래 사람들은 어머니날을 더 챙겼고 어머니날 선물비 지출이 아버지날보다 보통 35% 정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에는 어머니가 가정에서 가장 헌신적인 존재라고 여겨졌던 마음을 잠시 접고 아버지를 각별히 마음에 두자. 아버지가 식량을 구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을 것이다. 평범하고 선한 ‘이 시대의 영웅’이 우리집에 살고 있다. 아버지에게 존경과 감사를!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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